『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 수마나 로이 지음 (24년 6월 27일, 추천: 책방지기)

by 신서윤

작년 6월 27일은 적어도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는 날이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날들이 흐릿해지는데, 이상하게도 책을 두고 나눈 대화의 장면은 또렷하게 남는다.
대전 궁동, 작은 독립서점 우분투북스에서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책은 전형적인 소설의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의 사유와 감각이 비인간적인 존재인 ‘나무’를 통해 펼쳐지는 에세이다. 아직도 나는 에세이를 많이 읽어버릇하지 않아 이 장르가 여전히 낯설다. 소설처럼 따라가야 할 이야기의 흐름도 없고, 시처럼 압축된 언어에 몸을 맡기는 것도 아니다. 아마 이날의 나 역시 이 낯섦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책은 나무에 대한 관찰과 사색, 나무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은 과연 나무처럼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이 질문들은 책을 읽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직전에 나눔 책이었던 『눈표범』에서처럼, 이 책 역시 기다리기와 느려지기의 감각을 불러온다. 빠르디빠른 인간과 느리디느린 나무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빠름’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나무의 가지, 뿌리, 잎사귀 같은 세부적인 요소들에 주목하는 저자의 시선이었다. 나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그 안의 구조와 결을 오래 바라본다. 그러한 관찰을 통해 드러나는 질문은 인간이 과연 나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정말 나무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쓸모 있는 것들’만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어진다. 나무를 이용의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나무의 존재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뢰즈의 ‘-되기’ 개념도 떠올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식물-되기란 인간이 나무처럼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나무가 가진 감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에 잠시라도 자신을 겹쳐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나무의 리듬에 자신을 중첩시켜본다. 나무 사진을 찍고, 나무를 그리고, 나무의 그림자와 자신의 몸이 합쳐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런 모습들은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선다. 철학자와 시인, 신화적인 인용들이 함께 등장하며 사유는 점점 확장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적이거나 보통의 결말을 짓지 않는다. 저자의 사유와 여행 같은 여정은 ‘나 자신과 나무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남긴 채 열린 상태로 책을 덮게 만든다. 작가는 나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는 성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무는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동사 "to be" 방식이지만 뿌리줄기의 구조는 접속사 "and" 방식이며, 접속사 "and"에는 동사 "to be"를 뒤흔들고 뿌리 뽑을 만큼 거대한 위력이 숨어있다."(88p)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말없이, 느리게.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앞에서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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