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강의를 하다 보니 <페르소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페르소나라는 용어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구스타프 융이 이야기했죠.
“한 사람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의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
예전 대학로의 한 연극에서 ‘배우가 자신의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는 피에로’의 역할을 하는데, 그 장면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그 피에로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 가면을 벗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코미디 연극에서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습니다.
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리더의 분위기에 맞추느라 내 본래의 성격과 다른 가면을 쓰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계층 의식이 강하고 전체주의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조직 분위기에 영향받지 않고 나답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았고,
더욱 무서운 것은 나도 모르게 그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를 지지하고 강화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죠
30대 후반 추석 명절에 집에 내려갔을 때, 내가 협력업체 담당자와 전화하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가 “너답지 않다”며 놀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내 본성과 너무 다른 무리한 가면를 쓰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무엇이 맞다고 말하기 어려운 딜레마입니다.
페르소나는 일의 성취, 일의 행복을 붙잡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취약하고 유연하기 때문에 조직의 요청을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면을 준비해서 쓰고 다시 벗어가며 적응해 갑니다.
하지만 내 페르소나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적응하려 해도 작동이 안 되는 시기가 옵니다. 내가 만든 어떤 가면을 써도 내 인격이 거부하게 되는 시기죠.
그때는 조직을 떠나야 합니다. 내 인격과 맞지 않은 조직에 속하거나 그러한 일에 종사한다면 겉보기에는 잘 사는 것 같아도 ’ 일의 행복‘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곳에서 썼던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 있을 때 조직을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영영 벗겨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