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또 주어졌음을 감사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일이 내게 올지 생각해본다. 가슴이 벅차다. 이불을 걷어낸다. 나의 첫 성공이다. 서서히 내 몸을 깨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조용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어폰으로 잔잔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걸음 올릴 때마다 더 깊숙히 들어간다. 류시화 시인의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오늘은 정말 만날 수 있을까? 내 안에서 나로 있게 하는 존재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트랙이 앞이 보인다.
스마트워치를 조정한다.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다. 오늘 목표는 5km이다. 첫 발을 내디딘다. 처음부터 속도를 올리지 않고 천천히 뛴다.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이 나를 반겨준다. 햇살을 온전히 받기 위해 허물을 벗어던진다. 그 옆을 나는 뛰어간다. 나도 햇살을 받고 싶어서.
달리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 시간에 나는 왜 뛰고 있는 것인지, 굳이 이렇게 밖으로 나와 뛰어야 하는 것인지, 운동하지 않고 편하게 조금 더 잠을 자는 게 더 좋은 게 아닌지, 종아리에 다시 통증이 오면 멈춰야 할지, 나는 정말 이 순간 행복한 것인지.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스마트워치가 1km를 뛰었다고 알려준다. 아직 4km를 더 뛰어야 한다. 속도는 내 생각보다 늦다. 개의치 않으려 한다. 내가 정한 거리만 뛰면 되는 것이다.
나를 앞질러 가는 여자가 보인다. 무시한다. 나는 내 속도로 달리는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이 속도로 5km를 달리는 것이다. 그분은 저 속도로 달리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내 목표가 아니고, 내 길이 아니니 함께 달릴 필요가 없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내 기쁨이 있다.
달리다 보니 문득 친구 생각이 난다. 친한 친구는 나보다 훨씬 빨리 승진을 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계급이 올라가서 노는 물이 달라지니 소원해졌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친구는 오로지 승진을 위하여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할 수 있는 부서로 다녔다. 경찰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수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수사 업무를 하였고, 승진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계급이 높지만 수사 업무는 전혀 모른다. 서로 다른 길을 다른 호흡으로 뛴 것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고 만족한다. 5km를 나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들을 내가 부러워하지 않듯이 나보다 계급이 높은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템포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벌써 4km가 넘었다. 마지막 1km. 처음보다는 속도가 빨라졌다. 땀이 나고, 거친 호흡에 적응을 하였고, 내 두 다리는 자동으로 뛰어나간다. 오늘은 조금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 무리해서 뛰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바로 그 마음을 멈춘다. 잘 될 때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무사히 완주하였다. 마치 결승선이 있는 듯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다.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공기와 햇살이 무한정 내게 사랑을 베푼다. 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러닝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하루종일 나를 비춘다. 작은 목표를 이뤄낸 성취감이 온몸에 퍼진다.
차분해진 호흡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뛰기 위해 스트레칭을 한다. 뛰기 전과 후가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인생도 그런 듯하다. 한창 달리는 젊음의 시간보다 유년이 중요하고, 마무리하며 여유로워지는 장년이 더 중요하다. 나는 매일 아침 러닝으로 이 사실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