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내 인간관계 스킬은 처참하리만치 보잘것없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인간관계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업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이 가 있었다. (이게 알고보니 내 mbti의 특징 중 하나더라) 그렇게 혼자 있는 걸 선호하다 보니 더더욱 인간관계의 요령이나 눈치 있고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만 살 수 있는가. 직장이란 곳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 속에서 어울려 관계를 맺으며 일을 해나가야 한다. 나의 관심과 선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해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행동과 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행동들이 사회생활을 위해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늘 익숙해지지 않는 무엇이다.
그렇다고 회사생활에서 맺는 모든 인간관계가 스트레스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힘이 되어주는 관계도 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만남들
1. 타 부서 입사동기
경력직으로 입사하며 동기가 생겼다. 주기적으로 동기모임을 하며 같은 팀 사람들과는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운 회사 얘기들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각자 부서의 소식도 주고받으며 회사 돌아가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덤이다. 같은 팀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경쟁의식도 적고 동지라는 생각이 더 크다. 동기 중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따로 만나 회사 이야기를 넘어 개인적인 주제로 넓혀가며 서로를 응원해 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달려와서 위로도 해주고 괴롭히는 사람 욕도 해주며 동기애가 싹튼다.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조직 내 애로사항 등을 공감하며 대화하다 보면 사막 같은 회사생활의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2. 거래처 담당자
여러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거래처가 생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거래처 만남은 2곳이 있다. 1곳은 1년 7개월짜리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이사님이다. 이사님은 업무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을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보기 드문 분이셨다. 매일매일 카톡으로 업무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믿을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화해하고 꾸역꾸역 일을 하곤 했다. 둘 다 일을 잘해보려고 다툼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새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경지에 다다랐다. 프로젝트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사님과는 종종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다른 한 곳은 수시로 급한 일이 있을 때 연락하면 홍반장처럼 해결을 해주시는 업체 차장님이다. 잦은 의사결정 변경과 일정 변경에도 단 한 번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친 적 없어서 더 미안하게 만드는 분이다. 게다가 결과물의 품질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비용은 그에 비해 너무도 저렴하다. 이렇게 일하면서 만나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분들을 어떻게든 더 잘되셨으면 하고 응원하게 된다.
3. 경비 반장님 & 청소 아주머니
나는 인사성이 밝은 편이다. 회사에서 누구나 마주치면 먼저 인사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경비반장님과 청소아주머니랑 수시로 스몰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회사생활이라는 게 책상 앞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때로는 지하창고에서 짐은 옮겨야 할 때가 있고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반장님과 아주머니들과 친한 사이가 되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 좀 더 잘 들어주신다. 물론 그렇기 위해 친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나름 나의 소소한 인간관계의 재미이자 행복의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