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는 게 아니라, 불타올라야지.

by YOU A MI

좋아하는 것을 단기간에 싫어하게 만드는 법을 나는 알고 있다.

방법은 아주 쉽다, '좋아'는 하지만 그것을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면 된다. 매우 가혹한 '비교'와 함께라면 더더욱 효과가 좋다.

내겐 '미술'이 그랬다. 밤이고 낮이고 종일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때는 몰랐는데, 어느새 취미가 특기가 되고, 장래희망이 되자 입시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똑같이 밤이고 낮이고 종일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이 어떤 기준에 따라 채점이 되고, 남들과의 끊임없는 '비교'와 스스로의 '실력 저하'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림 그리는 게 싫어졌다.

대게 애정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행위든 상응해야 오래가는 법, 그렇지 못한 일방통행은 언젠간 제풀에 지쳐 꺾이게 된다. 더욱이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더 큰 상처와 실망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느새 '주눅'이 잘 드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다들 잘해서 자꾸 기죽어요. 저만 못하는 것 같아서."

매일 반복해서 훈련과 시험을 거듭했는데도 좀처럼 의욕에 비해 실력이 따라주지 않자 스스로도 '못하는 애'라는 인식이 강해졌을 무렵, 미술학원 강사선생님한테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돌아온 대답을 잊지 못한다.


"기죽는 게 아니라, 불타올라야지."


내 실력 향상의 초점을 '남들' 보다에 두지 말고 '이전의 나'에 두라는 라는 말이었다.

전에는 음영을 잘 못 넣는데 이젠 잘 넣네, 전에는 선의 강약 조절을 잘 못했는데 이제는 제법 할 줄 아네, 전에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는데 이제는 조금 단축됐네, 분명히 나아지는 것들이 있을 텐데 왜 늘 '쟤'보다는 말로 '자신'의 나아진 점들을 보지 못하냐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제법 뻔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 '불타올라야지'라는 말이 마음에 박혔다.

아아 그렇구나, 여태까지 주변에 기준을 두며 조급하기만 했지, 활활 타올랐던 적이 있었던가.

그제야 보였다. 그들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오들오들 추위에 떨며 그 주변을 서성이다 아 따뜻하다. 얘들은 따뜻해서 좋겠다 부러워하며 스스로 타오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여태껏 기가 죽는다는 말을 쓰며, 주눅 든다는 말을 방패 삼으며 내 안의 불씨를 꺼트리고만 있었구나.


때문에 나지막하게 툭 내뱉었던 그 말은, 성냥개비의 불씨가 되어 내게 불을 지펴주기에 충분했다.

강사선생님은 농담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입시장 내에서 누군가 기싸움을 하며 경쟁하고 있으면 "아싸 두 명~아싸 세명~(제쳤다)"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경쟁은 싸움을 이기는 것에만 맞추려다보니 초점이 흐트러질수밖에없고 때문에 경쟁은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해내야지"라는 마음자세가 정신 건강에도 더 도움이 된다며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말라는 말을 참 재치 있는 입담으로 해주시던 분이었다.

줄곧 침체되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데, 그 좋던 미술이 싫어지고 있었는데, '불'타오르라는 그 주문 같은 말 한마디가 터닝포인트가 되어 나는 그해 입시를 나만의 속도에 맞추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쥐어진 꽃은 못 보고, 다른 사람 손에 쥐어진 꽃만 탐내려고 하더라"


이 말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의 이야기. '장점'을 보지 못하고 '없는 것'혹은 더 '나아 보이는 것'만 치중하다 보니 자기 손에 쥐어진 꽃다발은 정작 보지 못한다는 이 ''에 대한 비유는, '불씨'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또 한 번 내 마음에 강렬하게 박혔다.


자신이 손에 쥔 것은 잊고 타인의 손에 쥐어진 것만 바라보고 있을 때,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노력의 시간을 건너뛴 채로 얻어진 것만을 탐낼 때, 나답게 사는 것보다 비교의 늪에 빠져 내 안의 불씨가 꺼져가고 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마법 같은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데 있다.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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