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같이 하이록스 나가자."
'하이록스(HYROX)' 대회가 열리기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참 어린 동생에게 파트너로 같이 나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왜 나였는지, 나의 어떤 점을 보고 그리 큰 마음을 먹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어물쩍 승낙의 대답을 하지 않는 내게 '생각해 봐'라며 이후로도 3번을 권유했다.
"언니! 까짓 거, 나가자!! 별거 있나!!"
선뜻 나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찾지 못해서 결국 그러자고 했다.
하이록스는 실내에서 즐기는 종합 스포츠로 러닝을 베이스로 하는 철인 8종 같은 피트니스 레이스라고 할 수 있다. 매 종목 전에 1Km씩 총 8Km를 달려야 하며 에르그 스키 머신, 슬레드 풀, 슬레드 푸시, 브로드 버피 점프, 에르그 로잉 머신, 파머스 캐리, 워킹 런지, 월 볼이라는 종목을 차례대로 얼마나 빨리 통과하느냐에 따라 등수가 나뉜다. 이 레이스는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같은 포맷을 두고 있기에 생각보다 자주 여러 나라 주요 도시에서 열리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작년 10월에 이어 이번 5월 17일에 인천에서 열리게 되었다.
꾸준히 F45라는 그룹운동 센터에서 6개월 남짓 운동을 해왔었다. 그런데 작년 10월을 거치면서 유명세를 탄 건지 유행처럼 주변 사람 대부분이 이번 5월에 열리는 하이록스에 참가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혀 관심 갖지 않았었는데 같은 센터에서 운동하던 한 동생의 권유로 결국엔 나 역시도 '참가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남은 한 달간 F45 외 하이록스 전문 트레이닝 센터를 추가 등록하여 이왕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운동 강도를 높여 대회를 준비했고, 어찌어찌 한 달이 흘러 5월 17일 당일, 정말 '죽을 것 같다'라는 한계 지점을 내내 느끼면서 매우 힘들게, 정말이지 말 그대로 '겨우' 레이스를 마쳤다.
"대회 어땠어?"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대답했다.
"그냥, 했어."
잘했다, 못했다, 힘들었다, 죽을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를 떠나 끝나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어찌 됐건 하긴 했네.'
내 전반적인 인생 모토는 거의 이랬다.
좋고 싫고를 떠나,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어찌 됐건 하긴 했다.
인천 하이록스대회가 끝나고 당일부터 인스타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과 영상들이 업로드되었다. 주변에 참가자들이 워낙 많았고, 알고리즘이 다 그 방향으로만 흘렀기 때문에 인터넷은 하이록스로 도배되었다. 나 역시도 함께 응원을 와주었던 사람들이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겨 주었지만, 조용히 사진과 영상들을 들여다보면서도 쉽사리 올리지는 못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저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쇳덩이 같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라는 생각과 '그래도 레이스는 마쳐야 해'라는 생각이 충돌하며 내내 안간힘을 썼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기 때문이었다. 내내 화가 난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땅만 쳐다보며 숨을 헐떡였기에, '파이팅'이라는 응원의 호응해주지도 못했고, 전혀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록스라는 녀석을 기어코 끝냈다.
갑작스러웠지만 시작했고, 어설펐지만 끝이 났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남아있었다.
YOU DID IT
대회 시작 전에 운동하던 센터에서 응원용으로 준비해 준 물품들(에너지젤, 에너지 보충제, 에너지 부스터 등)을 받았는데, 그때 나눠준 물품 중 커피에 적혀있던 문구가 이번 대회의 전부를 말해준다. 그 수많은 이유와 과정을 거쳐서 어찌 됐건 했다, 결국엔.
내가 가진 능력 중에 제일 잘하는 것,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재능은 이것이다.
일단 시작한 것은, 결국 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제쳐두고라도 '꾸준히' 그리고 '끄끝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 내 유일한 장점이다.
내겐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림도, 운동도, 독서도, 반복되는 어떤 행동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더 단단히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더욱이 그 일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어서 망설여질 때,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를 떠나 경험치를 한껏 올려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이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넌, 했어. 끝까지 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