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다. '땅' 위의 흙이 비가 온 후에는 진흙이 되었다가 마르면서 더 '단단'해지는 현상을, 어려운 상황을 겪은 '사람'이 후에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다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고난과 시련이라는 비를 맞은 후의 땅은 진흙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거쳐 굳건해진 땅이라는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 말속에 '고난'의 강도와 '극복'의 정도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요즘같이 부쩍, 자꾸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에는 이 말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만다.
'실수'가 잦아질 때, 머릿속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떠돌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삶을 바라서일까, 무언가에 '도전'한 적도 없으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켜켜이 쌓였을 뿐인데 아주 쉽게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그 엉망인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한다고?'에서 '또'가 붙으면 쉽사리 '그럼 그렇지, 내가 이렇지'가 되어버리고,
'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에서 '또'가 붙으면 쉽사리 '내가 잘못 살고있구나'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제는 조금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일이, 미숙하다고 생각했던 일은 여전히, 그렇게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간다고 생각되면서 자신에게 그저 실망스러웠다가, 화가 났다가, 결국에는 울적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 우울함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또'를 붙인다. '또 이런다, 나'
평온한 일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아니 바라지만 그게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위기에 매번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항상 품는 그 의구심, "비 온 뒤에 땅은 굳건해집니까"라는 그 물음에 나는 늘 진흙 같은 답변을 늘어놓았고 대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진흙이 굳어질 새도 없이 계속해서 비슷한 실수와 사고 속에서 해메이다 늪이 돼버릴 것만 같은 자신을 보면서 성장이란 말에 늘 의문을 가질 뿐이다.
살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때가 많다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지만 이왕이면 꾸준히 해오는 것들의 작은 성장과 성취감, 관계의 돈독함 등의 작은 기쁨 하나씩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일상은 어떠한가. 햇빛보다는 자꾸 비를 내리며 땅이 마를 새도 없이 진흙만 깊어진다.
나아지고 싶었던 것들이 고쳐지지 않아 화가 났다.
사소한 것들로 어긋나는 타이밍과 쉽사리 놓쳐지는 인간관계가 허무했다.
반복되는 일련의 상황들이 지치기만 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사소한 잣대로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해 가며 갖지 못한 것들을 일일이 슬퍼했다.
한 해가 지나고 성찰을 하게 되면 이듬해는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던 걸까. 시간이 지나면 싫은 것들은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조금은 상황 대처에 여유가 생겨 웃을 일들이 하나라도 늘어갈 거라 믿었던 걸까. 내 나이는 지금 한참 어른의 나이인데, 한해 전에도 이런 모습을 하고 한해뒤에도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진 않을까 문득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인생 고액과외 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뭐든 망설이지 마"
라는 말은 지인에게 들은 실패에 대한 응답 중 가장 신선한 표현이었다.
생각해 보면 '실패'는 일이든 목표든 관계든 실패라고 생각한 그것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아니면 '재도전'하면서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를 묻는 단어였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어느 쪽이든 '다시 시작하세요'가 초점이었다.
이는 비 온 뒤의 땅이 여전히 진흙탕이든 굳건하고 단단한 땅이든 어쨌든 밟고 지나가야 하는 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 지나가야지. 땅이 어떻든 밟고 가야지, 그거였구나.
이 땅이 아직은 질펀해서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기만 해도 결국 지나갈 땅이다.
"비 온 뒤의 땅은 굳건합니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계속해서 미래에 묻는다. 지금이 지나면 굳건해 집니까?
설령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고칠 수도 없이 일정 부분 고정되어 있는 이내 마음은, 여전히 싫은 사람 앞에서 웃을 수 없고, 욕심은 비울 수 없고,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모습으로 고쳐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어떤 걸 얻었다 하더라도 감사하고 만족해 하기보다 어쩌면 그 안에서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굳이 찾아내며 불행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기분은, 거기에 멈춰 서있게 할 뿐이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자주, 계속해서, 비만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 그러니까 지금을 지나칠 나에게 그럼에도 계속 딛고 걸어가야 한다는 힘을 주는 이 질문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