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기억

시간을 배제하면 모두 같은 프레임을 담고 있다.

by 달박상

그가 보낸 메일에는

같은 장소를 찍은 세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림자가 선명한 새벽의 붉은 사막,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잃은 한낮의 사구,

그리고 시간을 품은 빛의 궤적


각각의 사진 아래에는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짧은 촬영 일지가 붙어 있었다.


이곳은 사막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작업물을 맡기고, 물품과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촬영팀 몇 명과 이곳 어시스턴트와 함께 와르자자트로 나왔단다. 후발 팀이 도착하면 함께 다음 여정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_ May 4, 2010, 5:00 a.m.

늪처럼 발목을 조이는 모래들.
사막을 바라보고 있으면 파도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거대한 사구 사이로 보이는 촬영팀은 마치 파도 사이를 걷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이 한때 바다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사막이 바다를 닮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구와 파도
고요가 주는 정적과 소음이 주는 침묵.

목마름을 풀어줄 수 없는 것을 보면 바다 또한 사막이다.



_ May 4, 2010, 1:00 p.m.

푸른 하늘 아래 들끓는 대기가 지평선의 경계를 지운다.

사막은 하늘을 구분하기 위해 날카롭고 유연한 선을 그렸다.

선 위에 웅크린 나는

이제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암실 속 필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_ May 4, 2010, 8:00 p.m. – 4:00 a.m.

어둠까지도 삼켜버릴 것 같은 사막의 밤이다.

오직 빛만이 원의 궤적을 그린다.

사막은 사라지고 하늘만이 남았다
하늘은 사라지고 공간만이 남았다
공간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사막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시간을 배제하면 모두 같은 프레임을 담고 있었다."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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