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분석이 되는 실패는 괜찮습니다

프로그래밍 경영: 피드백과 학습

by 달박상

"규정이라는 게 있는데, 왜 그래야 합니까?"

의아해하는 대표에게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관례 같은 거지. 쭉 그렇게 해왔으니까.


잠깐 고민한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관례?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우리는 안됩니다."


관공서이고, 4년 동안 쭉 우리가 해온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물었다.


그러다 계약이 어그러지면 어떻게 해?


"그래도 할 수 없죠.

그게 무서워서 남의 기준에 우리를 맞추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들을 훓은 대표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씨(아들은 회사에서 나를 이렇게 부른다). 하나 물읍시다.

만약 관례대로 해서 계약을 불발되면, 그건 누구 책임입니까?"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그것 봐요! 어차피 리스크는 우리 몫입니다.

만약 계약이 틀어지더라도—

적어도 기준을 수정한다던지, 대응 시스템을 연구하던지...

무슨 발전이라도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MZ대표는 잠깐 사이를 두고 강조해서 말했다.


"분석이 되는 실패는 괜찮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좀 미심쩍은 일이 있어도

늘 ‘괜히 문제 만들지 말자’는 마음으로 관례를 반복했다.

잘못된 조건문을 그대로 실행해 온 프로그램처럼,

내 머릿속에 있는 ‘관례 == 정답’이라는 코드 한 줄이

모든 판단을 가로막았던 셈이다.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아들. 아까 회사에서 네 말 듣고 정말 생각이 많았어.

난 관례대로 해서 좋은 결과면 안도하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쩔 수 없지.라고 넘어가고 그랬거든.

어차피 우리같이 작은 곳은 늘 '을'이니까.


아들이 답답하다며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금액에 계약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뭔데.

책정 금액에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요구하는 건

그건 '갑'이 아니라 '갑질'인 거다. 그 정도는 구분해야지."


말만으로도 속 시원했다.


아들의 말이 이어졌다.

"난 계약자도 '갑', 발주처도 '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가격이든, 인권이든 균형을 이루지.

관계적으로 맞지 않으면 계약을 안 하면 될 일이고—

이게 다 이전 세대가 하던 대로 하는 '관성'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해 캠프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계약금액도 이전과 많이 차이 나는 최고액이었고,

약간의 물과 차가 비치된 12명의 강사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도 제공받았다.


그동안은 바라기만 했던 부분들이

이렇게 당연한 듯 제공되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뻐근했다.

그동안 우리를 얼마나 작게 만들고 있었던 걸까. 부끄러웠다.


캠프 준비는 어느 해보다 안정적이었고, 강사들은 여유 있게 웃으며 강의실로 들어갔다.
현장은 매끄럽게 돌아갔고, 프로그램 평가도 최고점을 받았다.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은 회사 시스템 전체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도 조금씩 버전 업되고 있었다.


MZ대표, 아니 아들의 말처럼 관성에 기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학습하지 않는다.

업데이트가 멈추면 시스템은 낡아 버린다.


삶 또한 그렇다.

한 번 짠 코드를 평생 돌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하고 학습해야 한다.

혹시 지나간 많은 시간들을

‘다들 그러니까’라는 코드로 보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검증된 코드를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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