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년 전의 밀양 집단 성폭행사건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일명 ‘사이버 렉커’로 불리는 유튜브 채널에서 가해자였으나 처벌을 받지 않는 이들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채널은 삽시간에 인기를 끌었고 다른 유사 채널에서도 밀양 가해자라며 사진과 이름이 공개가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직업과 사는 지역도 공개가 되며 국민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공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최근 결혼을 앞둔 모 기업의 가해자는 퇴사를 하게 됐고, 누구는 파혼을 하게 됐다는 소식들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가해자들도 모두 공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수년동안 묻혀있던 또 다른 억울한 사연들이 하나둘씩 인터넷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가해자들에게도 사적 제재가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처벌받지 않거나, 처벌이 약해) 분노하게 하는 사건들을 보게 되면 입법부, 사법부의 무능함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또 국민들이 공적 제재에 대해 불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20년 디지털 교도소를 운영했던 운영자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 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사법부의 무능함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다 드라마 ‘비질란테’라던지 영화 ‘용감한 시민’등을 통해 불의를 법을 대신해 싸워주는 영웅이 등장하기도 했고,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사회가 해 주지 못한 복수를 부서질 것 같은 배우 송혜교를 통해 해 내는 것을 보며 열광했었다.
아마도 국민들은 고구마를 이 정도 먹었으면 사이다는 아니라도 이제 동치미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나 생각하는 단계는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유튜버들은 자의적으로 사적 제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이익이 목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배드파더스 같은 채널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모 유튜버처럼 실제 범죄자들을 만나고 사생활을 파헤쳐 체포까지 함께하는 등 수사에 직접적으로 큰 기여하는 채널도 생겨나게 됐고, 매드브로의 육은영은 길거리의 무뢰한이나 도로의 무법자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을 통해 구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입법부, 사법부가 한계에 닿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6월 13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형벌인 사형제도가 있는 미국이 사적 제재가 더 많았음을 지적하며 강력한 법과 사적 제재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지 몰라도 인과관계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인과관계는 없지만 상관관계가 있다면, 그래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어떤 법도 사적 제재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다양하고 창의적인 법안이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대가 변하고 인공지능이 사물인터넷과 연동해 집안을 쾌적하게 운영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관련 법안마저 고리타분하고 편협하게 가져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우주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고, 양자컴퓨터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한 번에 풀어낼 텐데 언제까지 법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사적 제재에 대한 모호한 경계선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몇 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피해자 본인이 아니라 제삼자의 사적제재로 사건과 관계없는 제삼자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행위는 예외 없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 가해자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번 밀양 사건의 가해자로 공개된 인물 중 한 명이 실제 인물이 아니어서 큰 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를 공개했던 유튜버는 자신의 개인 신상을 오픈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니 ‘실수입니다.’ 하면 됐지만 일순간 가해자로 몰린 그 사람의 인생은 그야말로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세 번째, 선과 악의 구분을 지을 수 없다. 법으로도 선과 악을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다수의 사람들이 인민재판을 벌이는 일은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토끼몰이를 하듯 사냥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올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네 번째, 진짜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득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방향은 가해자에게만 향해 있다. 하지만 그 가해자 중에는 전관예우를 중요시하는 사법부와 무능한 입법부 등 기득권층도 포함돼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무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사적 제재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핫한 사회적 이슈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을 읽었다. 사적 제재는 심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려된다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한 기자는 그 사적 제재를 받은 가해자는 사회로부터 고립될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결국 무엇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생각해 볼만한 얘기였다. 교도소는 그들을 교화라도 시킨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날카로웠다. 그 기자의 우려마저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해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기득권이 제 역할을 하도록 언론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2024 세계 언론자유지수 결과가 지난해 47위에서 올해 62위로 하락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61위로 우리보다 순위가 높았다. 세계 경제력 10위에 달한다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자유롭게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권과 사법부에 책임이 있다. 툭하면 명예훼손으로 걸고넘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사회의 톱니바퀴 하나가 틀어져 제 역할을 못하니 온통 다 틀어져서 난리도 아닌 것이다.
국민은 언론과 기득권층을, 언론은 기득권층을, 사법부는 입법부를 입법부는 사법부를 항상 경계하고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마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고쳐쓰기 더 어렵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면서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이 떠올라 적어본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참고문헌>
이채영 and 박성혁. (2021). 중학생의 사이버 사적제재에 대한 우호적 태도의 이해 - 서울시 A 중학교 학생의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 법교육연구, 16(1), 115-154.
김찬호. (2024). 표지 이야기 “한국 사법절차 공정했다면 사적 제재 나왔겠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인터뷰. 주간경향,(1584),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