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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희 Sep 22. 2024

그들은 스스로를 하우스리스 Houseless라 부른다.

노매드랜드 Nomadland

오랜만에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영화를 만났다. 클로이 자오 감독, 프란시스 맥도맨드 출연의 <노매드랜드>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영화라 어떤 사족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모처럼 가슴 뛰는 영화를 공유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너무 좋은 영화라 영화의 감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영화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는 2017년 출간된 ‘제시카 부르더’의 <노마드랜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책은 실제 노매드들의 삶을 추적하는 논픽션이지만 감독과 작가에 의해 ‘펀’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서정적인 서사가 갖춰지게 됐다.

-우리가 쓰는 노마드(유목민)라는 말은 '노매드'로 표기로 하는 것이 맞아 영화는 책과 다르게 <노매드랜드>로 개봉한 것으로 보인다. 


책과 영화에서는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자본주의의 피해자들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의문점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노매드(노마드)라고 하면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의 느낌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어디에서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있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고, 은퇴한 중산층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노매드의 삶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가치관이라면 패권국가라 하는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에 의해 경제력을 잃은 사람들이 길위를 떠돌며 사는 것을 말한다.

영화 속 주인공 펀이 그렇다.  남편이 죽고 일터와 집도 잃고 타의에 의해 노매드(유목민)가 되어 밴을 타고 길 위에 나선다.


실제로 이때 미국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상황이 좋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와 911 테러가 일어났고,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 경기가 악화됐다. 이를 반등시키고자 미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주택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부동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주택담보대출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주택가격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보전되어 금융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였기에  거래량은 대폭 증가하였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다. 증권화되어 거래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사태에 빠졌다. 그 과정에 여러 기업들이 부실화됐지만 미국 정부는 개입을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이에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적인 신용경색(credit crunch)을 가져왔고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었다. 이 과정들이 세계 경제시장에까지 타격을 주어 2008년 이후에 세계금융위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극 중의 펀도 남편과 일하던 US 석고가 파산하고 집을 잃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펀은 살림살이를 창고에 맡겨두고 밴에 의지한 채 노매드의 삶을 선택한다. 이때의 펀은 이방인에 가깝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소변을 보는 것조차 눈치 보고 힘이 든다.

그러던 펀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은 다른 노매드들과 일을 하고 캠프를 차려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들은 일정 기간이 되면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는 실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노매드들을 연말 추수감사절, 블랙프라이데이 성수기에 몇 천명 단위로 단기 채용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때 아마존은 노매드들이 머무를 수 있는 캠퍼포스 Camper Force를 운영하는 것이다.

문제는 채용 이면에 있다. 노매드의 상당수가 60대 이상의 은퇴자인데 아마존의 업무 환경은 상당히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일이 힘들어 단기 채용임에도 불구하고 일수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단순 반복 업무를 위해 왔다 갔다 하는 픽커의 모습을 보고 ‘아마 좀비 Amazombie’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동자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마존과 동물원의 ZOO의 합성어 ‘아마주 Amazoo'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마존은 왜 노매드들을 노동자로 쓰는가?

단기채용이 쉽다는 이유이다. 이는 짧게 쓰고 버리기 쉽다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가치가 없을 때 차갑게 버릴 수 있는 것이 대기업의 얼굴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 노인 채용을 통해 국가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받는다. 이것이 로봇이 모든 배달을 맡아할 줄 알았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 노매드들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펀은 노매드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적게 소유할 뿐 이런 경제원리에서 배제될 수는 없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펀이 노매드의 길을 선택하며 점점 강인해져 가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논리와는 또 다르다.

한 인간이 아픔과 상실을 통해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아주 영리하고 심도 깊은 영화였다.


인간은 결코 태어날 때부터 강하거나 약하거나 의지력이 강한 것이 아니다.

서서히 강해지고 명철해지는 것이다.

행복한 죽음-알베르 카뮈


때문에 나는 펀의 인생과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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