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주먹도끼로 부수다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인도를 기준으로 인도의 서쪽인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지역을 아슐리안 주먹도끼 문화권이라고 불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비우스는 동아시아지역을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열등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종차별적 가치관이 내포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모비우스의 이론이 고고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978년 1월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서 대대로 이어져 오던 이 학설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주한 미공군 기상관측병 그렉 보웬(Greg L. Bowen)은 한국인 여자친구와 한탄강변 유원지에서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러다 코펠에 커피를 끓이기 위해 주변의 돌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렉이 보기에 여자친구가 주워 온 돌 모양이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그는 돌을 집으로 챙겨 와 프랑스의 고고학자에게 돌의 사진과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 돌을 본 프랑스 교수의 소개로 김원용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에게 돌이 보내져 돌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김원용 교수는 그 돌이 약 30만 년 전인 전기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주먹도끼라고 밝혔다.
우연한 사건이 고고학계의 학설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물론 그렉 보웬은 고고학 전공자였고, 그 남녀가 데이트를 했던 한탄강 주변은 구석기 유적지였다는 우연이 겹쳐지기는 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 아닐까 싶다.
주먹도끼의 발견이 이토록 중요한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가 발견이 됐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주먹도끼 이전에 주로 사용하는 도구라고 하면 찍개인데 둥근 자갈에 한쪽에 날카로운 날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형태적인 측면은 단순히 돌의 끝부분을 깨뜨려 날카롭게 만들기만 했기 때문에 완성된 석기의 모양은 석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 돌의 모양새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의 모양들이 다르듯 찍개 모양도 모두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먹도끼는 끝부분이 뾰족하고 아랫부분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며 둥글게 마감되어 전체적으로 물방울모양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찍개와 달리 일정한 모양새가 있고 모양에 따른 기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석기류를 사용하는 구석기시대 전기를 1차원적인 공간 해석능력을 넘어서 2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섬세한 도구제작 기술 수준으로 도약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인류가 한 발짝 도약한 것을 볼 수 있는 유물인 것이다.
그냥 돌덩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주먹도끼는 전곡리 전곡 선사 박물관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
1859년 프랑스의 ‘생 아슐(St.Acheul)’지방에서 세계 최초로 ‘돌도구의 양쪽’을 날카롭게 만든 ‘주먹도끼(양날찍개)’에서 이름이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