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탄생
의사 조셉 벨(Joseph Bell)은 강의 중에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을 보기만 할 뿐 관찰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한 번 보면 그 얼굴에서 국적을 알 수 있고, 손을 보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죠, 걸음걸이, 태도, 시계줄의 장식, 옷에 붙은 섬유 조각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벨 박사는 셜록 홈스의 본체라고 할 수 있다. 아서 코난 도일도 그의 자서전에서 이점을 인정했다. 셜록 홈스가 추리나 분석을 위해 사용한 방법은 벨 박사가 평소에 신조로 삼고 있었던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사소한 것의 중대한 의미, 사소한 일의 무한한 중대성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수세공일은 각기 독특한 흔적을 남깁니다. 광부의 상처는 석공의 상처와는 다르죠. 목수의 손에 박힌 못은 석공의 손에 박힌 못과 다릅니다.
셜록 홈스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1881년 에든버러 의과대학(University of Edinburgh)을 졸업하고 안과의를 개업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출세를 하지 못하자 코난 도일은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작들이었다. 그러다 1887년부터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점점 더 새로운 탐정을 창조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스승 벨 박사였다.
벨 박사는 묵묵히 한 외래 환자를 관찰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육군의 하일랜드 연대에서 근무한 일이 있군요. 제대한 지도 얼마 안 되죠?”
“그렇습니다. 선생님”
“바베이도스에 주둔했던 부대의 하사관이었죠?”
“맞습니다.”
벨 박사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이 분은 신사입니다만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는 모자를 벗지 않죠. 만약 이 사람이 제대한 지 오래되었더라면 민간인의 예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위엄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보아 스코틀랜드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바베이도스에 근무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그의 병이 상피병이었기 때문이죠. 그건 서인도제도의 풍토병이거든요.”
코난 도일은 이날의 일에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아 나중에 셜록 홈스 시리즈의 ⎡그리스인 통역⎦에서 거의 그대로 이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물론 좋은 스승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에 맞는 좋은 제자가 있었기에 셜록 홈스라는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에 벨 교수가 팔 말 가제트(Pall Mall Gazette) 기자에게 이야기한 일화가 있다.
“도일 군은 시종 노트를 들고 있었으며 내가 한 말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기록했고, 환자가 진찰실로부터 나간 뒤에는 뻔질나게 나에게 진단결과를 반복하여 물었어요. 자신이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는가를 언제나 확인했지요.”
“도일 군은 내가 가르친 제자 중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단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무척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미세한 점까지도 발견하려고 하는 불굴의 노력가였지요.” -포렌식 사이언스 범인을 찾아라 중-
실제로 코난 도일은 대학생활 동안 다른 학생들과 여가를 보내기보다는 화학, 약물, 실험 등 흥미로운 학문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들로 인해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를 탄생시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1907년 가축 도살 혐의를 받고 억울하게 복역을 하고 있던 조지 에달지 사건을 관찰력을 토대로 무죄로 입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현실판 셜록 홈스였다. 이를 뒷받침하자면 코난 도일이 죽기 전 아들 에이드리언에게 “만약 셜록 홈스가 있다면 그는 바로 나다.”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셜록 홈스의 모델에 대해 말이 많다. 벨 박사인지 아니면 다른 유명 탐정인지, 아서 코난 도일 본인인지 말이다. 하지만 범죄학자 앨버트 울먼(Albert Ullman)은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보다 유능한 범죄학자다.”라고 한 것을 토대로 보자면 아서 코난 도일은 훌륭한 것들을 토대로 제대로 된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가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 이쯤에서 왜 코난 도일의 수사(추리) 기법이 이와 같이 현장에서도 인정을 받는 것인지 살펴보자.
당시 19세기만 해도 범행 현장의 수사란 주먹구구식이었다. 현장보존이라는 자체가 없었고 현장을 분석한다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홈즈의 수사 기법은 과학 수사와 합리적인 증거 수집, 분석이 기본이 된다. 현장을 훼손하지 않고 발자국을 분석하며 혈액을 채취하고 심리를 파악해 다음 경로를 분석한다. 이것이 지금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파일링인 것이다. 홈즈는 자신의 가설을 발전시키면서 증거를 해석할 때 자기 가설에 유리한 증거만 보는 확증편향의 경향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찰→가능성 가설→ 가장 타당한 가설 선택(abductive reasoning)의 형태의 추리가 많았다. 이는 행동을 분석하고, 가설 검증을 거쳐 프로파일링을 하는 현대 프로파일링 방식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셜록 홈스를 사립 탐정이며 사회 심리학자이고 또 기호학자라고 평했다. 때문에 그의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셜록 홈스에 대한 오마주를 볼 수 있으며 셜록 홈스의 추리기법을 기호학으로 풀이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셜록 홈스를 통해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관찰하고 논리와 분석으로 일반 문학장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공이 인정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인물의 집념과 노력이 셜록 홈스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 둘은 모든 방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줬으며 그래서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일 것이다.
*상피병
팔과 다리에 심한 부종을 일으키는 기생충 감염병
*움베르토 에코
1932년 1월 5일~2016년 2월 19일.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철학가, 기호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등등 수많은 일을 해내는 천재.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다방면에 박식한 사람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저서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등이 있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데뷔작. 1980년 이탈리아에서 첫 출판된 추리소설로 1327년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이야기. 프랑스의 장자크 아노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100개 이상의 국가가 전 세계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복지 개선을 위한 정책을 장력하기 위해 정부 간 협력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