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월은 시원할까요?

국힙을 만드는 원조 힙탑, 활음조

by 장성희

우수하지만 어려운 한글

한글은 매우 매우 우수하다는 건 다시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외국인들이 한글은 정말 금방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아름답기까지 찬사를 보내는 영상들이 각 플랫폼에 넘쳐난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넘지 못할 난관이 있다고 한다. 표현이 다양한 한국어의 어려움과 때에 따라 달라지는 발음의 어려움이다.

아이들에게 유치원 때부터 가르치는데 고생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한 게 열두 달의 이름이다. 간혹 모르는 이들도 있는데, 한 번 자신이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육월? 아니다. 유월이다. 그리고 다시 칠월, 팔월, 구월, 십월? 땡! 시월이다. 그리고 십일월, 십이월. 이렇게 열두 달을 읽는다.

이렇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어려워한다. 왜 이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유월이고 시월일까?



활음조와 종류

이것은 활음조 현상이라고 한다.

활음조란 듣기 좋은 음질을 뜻하는데, 매끄럽고 편한 발음으로 말하는 사람도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어의 독특한 소리변화 현상이다. 물론 한자로는 육 (六) 월 (月) , 십 (十) 월 (月)이지만 이것은 한글 맞춤법 제6장 52항을 보면 ‘한자어의 경우 본음과 속음으로 나는 것은 각 소리에 따라 표기한다’고 정해져 있어 한글의 발음 유월, 시월 그대로 소리 내고 표기하면 된다.


이와 같은 예로 초파일이 있다.

초파일은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초팔일’에서 ‘초파일’로 변화한 것으로 활음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五六月(오육 월)도 같은 맥락에서 ‘오뉴월’이 된다.


곤난(困難) → 곤란


간난(艱難) → 가난


관혁(貫革)→과녁


남무아비타불(南無阿彌陀佛) → 나무아미타불


무녕왕(武寧王) 무령왕


목과(木瓜) → 모과: '목과'도 한방에서 이르는 말로써 표준어로 인정된다.


수낙(受諾) → 수락 : 아래의 허락(許諾)과 같은 경우다.(활음조 현상으로 수락이 표준어이고 ‘수낙’은 옛말이다. 단, '수낙'이 고유명사로 쓰인 경우는 적용되지 않고 '수낙'으로 읽는다.)


폐염(肺炎) → 폐렴


한나산(漢拏山) → 한라산


한아버지 → 할아버지


한어머니 → 할머니


한 안음→한아름


허낙(許諾) → 허락 : 諾의 원음을 '락'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있다.


황단 → 황달(黃疸): 疸의 원음은 '단'이었으나 '달'로 바뀐 게 이윽고 굳어졌다


희노애락(喜怒哀樂) → 희로애락



찾아보니 꽤 많은 단어들이 활음조 현상으로 부드럽게 발음이 바뀐 경우들이 많았다. 이 활음조는 듣는 사람에게 유창하게 들리고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효과를 주기 때문에 이를 호음조(好音調) 또는 유포니(euphony)라고도 한다. 유포니는 좋은 발음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렇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얄라 (청산별곡靑山別曲, 악장가사樂章歌詞)


어리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井邑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아으 동동다리 (동동動動, 악학궤범樂學軌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악장가사樂章歌詞)


다로러거디러/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쌍화점雙花店, 악장가사樂章歌詞)

[네이버 지식백과] 활음조 [滑音調]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조 국힙 원탑은 아마도 얄리얄리 얄랑셩 인 것 같다. 흥의 민족인 게 말과 언어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말 하나하나에도 음을 생각해 발음을 바꿔 말한 선조들의 유희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활음조는 과거에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예로 활음조에 대한 체감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이제 실제로 우리가 발음하는 말 중에 사용되는 활음조에 대해 알아보자.



같히다 → 가치다 (‘ㄷ+ㅎ’이 ‘ㅊ’처럼 변하는 사례)


맞히다 → 마치다 (‘ㄷ+ㅎ’이 ‘ㅊ’으로 변화)


편리하다 → 펼리하다 (‘ㄴ+ㄹ’이 이어지며 ‘ㄹ’로 동화)


설날 → 설랄 (ㄴ+ㄹ이 만나 ‘ㄹㄹ’로 발음)


문리과 → 물리과 (ㄴ+ㄹ이 만나 ‘ㄹㄹ’로 발음)


한류 → 할류 (‘ㄴ+ㄹ’에서 ㄹ로 변화)


실내 → 실래 (‘ㄹㄴ’이 ‘ㄹㄹ’로 동화)


이와 같이 다양한 활음조 현상들이 있다. '서울역'을 '서울녁'으로 말한다던지 '갈 거야'를 '갈꺼야'와 같이 변형되거나 축약되는 현상도 이에 해당이 된다. 한마디로 활음조는 문법 규정이라기보다는 발음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발생되는 자연스러운 구어현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글을 배우는 어린이나 외국인등이 활음조로 발음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활음조는 단순히 발음을 편하게 만드는 규칙이 아니라 한국어가 가진 유연성과 아름다움의 증거이다. ‘유월’과 ‘시월’에서부터 ‘초파일’과 ‘오뉴월’, 그리고 현대의 구어까지 활음조는 우리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러한 소리 변화는 듣는 사람에게도 상쾌하고 리듬감 있는 느낌을 주어 한국어만의 독특한 매력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을 넘어 외국의 많은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 활음조는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에게도 한국어의 깊은 멋을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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