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땅을 밟은 최초의 코끼리

동물재판

by 장성희

2016년 3월 3일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15년 계약으로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중국으로 돌아간 푸바오를 낳았고, 다시 귀여운 쌍둥이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까지 낳아 대한민국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사람들은 단 5분이라도 귀염둥이 판다들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줄을 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있고 있다. 또 휴대폰으로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기 일쑤이다.

푸바오에 대한 사랑은 아직까지 이어져 중국보다는 환경이 좋은 우리나라로 다시 데리고 오자는 이야기들도 있다. 동물이란 참 귀엽고 귀한 존재다. 특히 국가와 국가가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은 더욱 그럴 것이다.


조선 최초의 코끼리

하지만 먼 이국 땅에서 왔음에도 그런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동물도 있었다. 1411년 조선땅을 밟은 코끼리가 그러했다.


일본 국왕 원의지가 사자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치니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는 것이다. 명하여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씩 소비하였다.
-태종실록(태종 11년)-


첫 번째 사건

일본 국왕의 선물로 받은 코끼리를 사복시라는 곳에서 관리하였는데, 사복시는 임금이 타는 말이나 금군들이 타는 말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우라는 자가 '기이한 짐승'이라고 하여서 가서 보더니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다. 이 때문인지 코끼리가 노하여 이우를 밟아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코끼리의 살인죄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된다. 정승이 재판관이 되고 병조판서가 검사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죄를 엄중하게 다뤄 사형을 내리려 했으나 일본왕의 조공이라는 점과 코끼리가 영물이라는 점을 참작하여 귀양을 보내게 된다.


전라도 노루섬에 유배된 코끼리는 섬에서 나는 해초를 먹을 수 없어 날로 수척 해져 갔고 사람들이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보고 받은 왕이 불쌍하게 여겨 다시 코끼리를 육지로 내보내어 기르게 했다. 하지만 역시 코끼리를 먹이고 키우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전라도 관찰사는 코끼리를 충청도, 경상도까지 세 지역에서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청했다. 그래서 코끼리는 다시 지역을 옮겨 다니며 길러졌다.

섬으로 유배 간 코끼리 삽화


두 번째 사건

그러다 다음 해에 충청도에서 다시 일이 터지고 만다. 코끼리를 돌보던 하인이 코끼리에 차여 죽게 된 것이다. 충청도 관찰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다 양식만 축내는 코끼리를 다시 섬으로 유배 보내 달라고 청한다. 그래서 코끼리는 다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됐다고 한다. 그 뒤로 코끼리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결말을 맞았을 것 같지 않다.


다양한 동물 재판

이렇게 동물을 재판하고 형벌하는 것이 특이해 보이겠지만 이런 재미있는 일들이 조선시대 코끼리 사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에 남은 첫 번째 동물재판은 864년 독일의 보름스(Worms) 시의 시의회가 사람을 쏘아서 죽게 한 벌을 재판에 회부하여 벌집을 질식사시키도록 판결을 내린 사례였다.


또 가장 흔한 것은 사람을 잡아먹은 돼지에 대한 재판이 많았다. 대개는 채찍질을 당한 후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새끼를 거느린 암퇘지가 사건을 저지른 경우 어미는 처형하고 새끼들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훈방되는 사례도 있었다.


16세기에는 농작물에 피해를 준 민달팽이에 대한 재판이 있었는데 이는 종교재판소까지 갔던 사건으로 당시 최고형인 파문에 처해졌다. 파문이란 영혼마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 민달팽이는 지금 천국 구경도 못해보고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웃프기도 하다.


18세기에는 브라질에서 동물재판이 열렸는데 가구를 갉아먹은 흰개미에 대한 재판이었다. 재판 결과는 유죄였고 흰개미집 앞에서 서로 괴롭히지 말고 살라고 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개미들이 과연 선언문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중세시대에 동물과 곤충들에 대한 재판이 자주 열렸었다고 한다.


유독 중세 유럽에서 동물재판이 많이 있었던 이유는 모든 생명은 신의 피조물이기에 '동물도 인간과 같이 권리가 있다'라고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었다. 또 동물은 스스로 변론할 수 없는데 이때 인간 법률가가 소송을 대리해 승리하면 그 법률가 자신에게 상당한 보수와 명성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동물 재판

물론 21세기에도 동물재판이 꽤 있다고 한다. 그중 개에 대한 재판이 많았는데 미국의 사나운 개이야기가 유명하다.

그 개는 사나웠기에 이웃들 모두 두려워했다. 하지만 주인만은 괜찮다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그 개는 결국 이웃을 물어 살해했고, 살인죄와 과실치사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개의 보호자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현대에도 동물이 재판을 받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인간이 동물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것은 생명에 대한 예의이자, 문명사회의 품격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동물 학대와 유기, 불법 번식장의 뉴스를 끊임없이 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지만, 돌봄의 책임은 종종 인간의 편의 속에서 잊힌다.


중세 유럽에서 ‘동물도 인간과 같은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 울려 퍼졌던 이유를 떠올리자.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은 단지 귀여움이나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과 존중의 무게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조선의 섬에 홀로 남겨졌던 코끼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함께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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