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

by 장성희

프롤로그

tempImageT906sI.heic 클림트의 <유디트 1>

클림트의 <유디트 1>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만큼 유명한 명화다.

홍조를 띤 얼굴에 나른한 듯한 표정.

그 아래로 떨어지는 가운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몸매는 관능적 여성을 표현한다.

이는 팜므파탈의 정석이라고 할 정도로 우아하다.


그녀의 이름은 ‘유디트(Judith)’

모든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그녀의 손에 칼이.

그리고 피가 흐르는 머리가 들려있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장. 성녀인가 악녀인가

유디트의 이야기는 성경에서부터 시작한다.


구약성서의 외경 「유디트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베툴리아에 사는 정숙한 과부였다.

아시리아 군의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군대를 이끄는 장군으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서방세계를 모두 점령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만이 신앙의 힘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남성들이 홀로페르네스의 기세를 두려워하자

계시를 받은 유디트는 말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유디트서 8:33)


신심 깊은 유디트가 하녀를 데리고 홀로페르네스의 적진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침대 기둥에 매달린 그의 칼을 잡아당겨
그의 목을 두 번 쳐서 잘라냈다.
(유디트서 13:8)

유디트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로 홀로페르네스의 적계심을 풀어 술을 마시게 했다.

이후 잠든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잘라내며 전쟁의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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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젠틸레스키의 유디트 (우)티치아노의 유디트



2장. 적의 목을 벤 영웅들

유디트 말고도 적장의 목을 베고 영웅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은 많다.


1. 다윗과 골리앗 (David and Goliath) -성경 사무엘상 17장

tempImageaXl7Om.heic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보르게세 미술관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이 전선 사이에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사를 보내어 한 번의 결투로 승패를 결정하라고 요구한다.

사울은 두려웠지만 다윗은 도전을 받아들인다. 사울은 마지못해 갑옷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다윗은 거절하고 지팡이와 물매, 시내에서 돌 다섯 개만 가져갔다.

다윗이 물매에서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 중앙에 맞히자 골리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다. 다윗은 쓰러진 골리앗의 머리를 잘랐다.

사울은 다윗을 데려오라고 아브넬을 보낸다. 사울이 누구의 아들인지 묻자 다윗은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다윗의 영웅 서사의 출발점이 생겨나게 된다.



2.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Perseus and Medusa) -그리스 신화

tempImageYGTprQ.heic 첼리니의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어부가 키운 페르세우스는 왕 폴리덱테스의 잔치에 초청되고서도 말을 선물로 줄 수 없었기에 왕에게 대신 다른 것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폴리덱테스 왕은 페르세우스에게 세상의 끝에 사는 괴물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 심하게 놀랐으나 페르세우스는 왕의 음모를 모르고 요구를 승낙했다.

여러 신들의 도움으로 메두사가 사는 곳에 도착한 페르세우스는, 하데스의 투구 퀴네에를 써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아테나의 방패를 이용해 청동면으로 거울과 같이 메두사를 비춰보면서 자신의 검 하르페로 그녀의 목을 베었다.

메두사의 목이 잘려나가는 그 순간 그녀의 피와 영혼에서 천마 페가수스와 '황금 검의 용사'라 불리는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다고 한다.



3. 삼손 (Samson) - 구약성경 사사기

삼손은 초인적인 괴력을 사용하여 수많은 학살을 자행했다.

사자의 배를 갈라 죽이거나, 사람을 때려죽이는 일이 허다했다.

자신의 능력을 현명하게 쓰지 못한 삼손은 델릴라라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 힘의 비밀을 발설해 버린다.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잃어버린 삼손은 노예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다.

다시 머리가 자란 삼손은 신에게 기도했다.

마지막 힘을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모아 삼손은 사람들이 있던 건물의 기둥을 무너트린다.

그때 깔려 죽은 사람이 이전까지 죽인 사람보다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윗의 참수는 신의 선택이 되고, 페르세우스의 참수는 괴물 퇴치의 미담이 되는데, 유디트의 참수는 끝없이 해석된다.
우리는 왜 유디트의 칼보다, 그녀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는가.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단지 칼이 아니라, 우리가 폭력을 구분해 온 기준—혹은 편의—를 겨누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장. 같지만 다른 폭력성

이것은 단순히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폭력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다윗은 영웅이 되어 왕좌에 올랐다. 페르세우스는 살해를 과업으로 미화했다. 삼손은 힘을 주체하지 못해 파괴했다. 그들에게 폭력은 영광이자 권력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유디트는 달랐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도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전리품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다시는 칼을 잡지도 않았다.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다시 조용히, 이름 없는 과부의 삶으로 돌아가 침묵을 선택했다.


“이스라엘에는 유디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않았다.” (유디트서 16:25 요지)


진정한 강함은 폭력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힘’을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아는 것.

자신이 휘두른 칼의 무게를 알고, 그 파괴적인 속성을 경계하며 스스로 칼집에 넣는 ‘절제’에 있다.



에필로그. 우리는 지금 어떤 칼을 들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물리적인 칼이 사라진 시대를 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폭력은 더 은밀하고 집요해졌다.


누군가를 향한 날 선 시선,

확인되지 않은 험담,

익명 뒤에 숨은 조롱과 배제.


우리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처럼 승전보를 울리기 위해, 혹은 삼손처럼 나의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타인의 일상을 난도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클림트의 그림 속 유디트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잔혹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칼을 들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유디트의 칼은 가장 뜨거운 순간에 멈췄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는 적을 베는 기술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말과 시선의 칼을 스스로 내려놓는
유디트의 저 서늘한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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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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