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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올프체스키 Jan 29. 2022

그래도 라디오를 듣습니다.

라디오 듣기 제일 좋은 밤 10시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나고 해가 지는 저녁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주파수를 맞춰 듣던 라디오. 제가 중학교 시절이었던 90년대 후반만 해도 라디오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듣던 친숙한 매체였습니다. 지금이야 운전을 할 때나 버스나 택시를 탈 때 잠깐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적어도 라디오란 MP3라는 신문물(?)을 소수만 즐기고 알았던 시기 다양한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잠시 그때의 추억을 꺼내 보면 여러분도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이 하나쯤은 있었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소라밤디'로 줄여 불렀던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쇼'가 가장 기억에 남고 즐겨 들었던 방송입니다. 97년부터 시작해 98년까지 진행했던 방송이었는데요.(이후 이소라는 '정오의 희망곡', '음악도시', '메모리즈' 등 꾸준한 DJ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녁과 밤 그 사이에 어울리는 재미와 감성을 모두 담았던 방송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연을 들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에는 괴담을 읽어주는 코너도 있고 정말 다양한 코너를 통해 단지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주는 채널이었어요. 이 글을 쓰면서 예전 라디오 방송들을 찾아 봤는데, 방송 기간이 길지 않아서였는지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쇼에 대한 글들은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저와 같은 기억이 나는 분이 있다면 참 반가울 것 같아요. ^^


라디오의 매력은 무엇일까?

'라디오'라고 하면 가장 먼저 추억, 아날로그, 감성, 사연 이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라디오와 함께 자라온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라디오의 매력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기다리던 노래가 나올 때의 짜릿함이 아닐까 생각해요.


생각을 해보면 90년대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 자체는 참 비싼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원하는 곡 하나를 듣기 위해서라면 음반을 구매해야 하거나 대형 음반 매장에 가서 청음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이런 노래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라디오라는 매체는 정말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DJ의 멘트 하나하나에 귀를 쫑긋 세우며 들을 수밖에 없었고, 왠지 오늘은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노래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오는데? 하는 느낌이 오는 때가 딱 있어서 그것을 기다려보며 두근두근 라디오를 듣던 기억도 있어요.


이런 이유로 당시 '공테이프'라고 부르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카세트 테이프나 CD가 집에 꼭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바로 녹음을 해서 나만의 베스트 모음집 하나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거든요. 녹음 중 DJ멘트가 들어가거나 광고 때문에 1절만 하게 될 때의 절망은... 누구나 겪어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라디오의 매력이라고 하면 DJ가 읽어주는 사연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다양한 노래를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 그 하나가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그 시절의 음악들은 유독 더 기억에 오래 남아 있고, 추억을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라디오 방송의 위기라는 말은 최근의 말이 아닙니다. 8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1979년 '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곡이 나오면서부터 라디오의 위기론은 계속 이어졌거든요. 하지만 80년대 90년대를 무사히 버티던 라디오는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정말 위기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됐고, 라디오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매체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최근들어 유튜브, OTT 서비스 등 정말 눈으로 보고 즐기는 영상 매체가 넘쳐나는 시기에 굳이 라디오까지 찾아 듣기엔 시간적 여유도 없어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닌데요. 오히려 영상 매체의 피로감 속에 MZ세대부터 시작되는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죠.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팟캐스트를 필두로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들의 광고 시장 규모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고, 국내에도 이런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https://www.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894034

하지만 오디오 콘텐츠가 떠오른다고 해서 라디오 시장이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들을 주로 듣게 되면서 또 다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라디오는 갈수록 청취자들이 점차 사라져 가게 됐습니다.


사실 요즘 라디오 방송의 특성만 봐도 점차 외면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새로운 노래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사연이 특화된 것도 아니고 이상한 퀴즈 프로그램과 너무 반복되는 광고 등 방송 자체의 매력과 재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라디오를 찾아 듣는 이유

이런 상황 속에서도 라디오는 분명 라디오에서만 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라디오를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혼자 듣는 매체라고 생각하겠지만, 라디오의 힘은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SNS가 일상화 된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듣고 좋았던 음악.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있어서 라디오는 분명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건데요.

함께 듣는 재미가 있는 라디오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내 사연을 신청했을 때 방송을 통해 소개가 된다면 다른 리스너들과 지금 이 시간 함께 듣고 있다는 것. 내 이야기를 누군가 함께 듣고 있다는 것은 공유의 시대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 여기 있어요."라는 말을 라디오를 통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감성도 채워주게 되는 것 같아요.


또한 라디오 역시 실시간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라디오를 듣는 행위가 이전에는 단순히 귀를 열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거였지만 최근에는 라디오 역시 앱을 통해 실시간 채팅을 진행하면서 DJ 그리고 청취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형태로 방송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바일로 넘어온 라디오가 다른 모바일 플랫폼이 제공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와 '감성'을 제공하면서 누군가에겐 최애 미디어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라디오는 그 시절처럼 다양한 음악과 사연으로 채워져 있을 때 가장 라디오답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가장 라디오 다운 채널을 하나 추천해 보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바로 CBS라디오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입니다. 이 방송만큼은 라디오를 듣는 분들이라면 꼭 들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라디오 방송 본연의 자세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방송이자 10시~12시 청취율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방송이기도 합니다. 아마 라디오를 듣는 분들이라면 많은 분들이 아실 방송일 거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숨겨진 명곡들을 주로 들려주고 허윤희의 차분한 사연 읽기와 목소리가 밤 10시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데요. 그 흔한 게스트 초대도 없고 중간중간 짧은 코너도 없고 오로지 청취자의 사연과 음악으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보통 노래 2~3곡이 연속으로 나오고 사연 하나가 소개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감수성 짙은 사연도 많고 그에 못지 않은 플레이리스트가 너무나도 매력적인 방송입니다.


쉽게 말해 '잡소리 없이 좋은 음악 많이 틀어주는 방송'이라는 말로 대표할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040 저와 같은 세대라면 분명 한번 듣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방송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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