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la mola Sep 13. 2023
오늘 회사를 못 갔다. 나는 회사를 안 가고 싶을 때가 많지만, 못 가고 싶은 적은 없었다. 오후 3시쯤 정신을 차려 천장을 보니 무척 울적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집 밖으로 기어나왔다. 이 시간에 만나줄 사람은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우울할 때 홀로 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는 건 안다.
카페를 겸하는 작은 동네 서점에 와서 책장을 들여다보는데, 장 그르니에의 '섬'이 보였다. 두 달 전 이 서점에 처음 왔을 때 주인에게 있냐고 물었던 책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주인에게 나를 기억해서 들여놓은 것인지 떠본다. 처음 보는 손님의 말을 듣고 책을 들여놓은 주인, 그간 팔리지 않았던 책, 잊고 있던 책을 마주친 나. 세가지 사건의 조화에 대해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역시 집 밖으로 나온 건 잘한 것이다.
서점 구석에 가장 편한 1인 쇼파에 앉아 글을 읽어내리려는데 빈속에 집어삼킨 항생제와 진통제가 머리 속에 먹구름을 띄운 것 같다. 한 줄 읽고 그 다음 줄을 건너 뛰고, 못 읽은 문장을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는 일을 한 2시간 반복하다 길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막연히 걷다가 집으로 들어서는데 밥을 같이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몽롱한 채로 밥을 먹고 문을 열고 나서기 전 그에게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냐 물었다. 말없이 안아주는 손길에는 작은 다정함만이 담겼지만, 나는 정신이 느슨한 틈에 기대 그 다정함에 기껍게 안겼다. 외로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