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를 둘러싼 100일간의 이야기
다시 시작한 취업 준비는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IT국비지원 교육을 받고 밤에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처음 접해본 코딩은 흥미로웠지만 생각만큼 실력이 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함께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의 실력 차이도 점점 벌어졌다. 기본적으로 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낀 소수의 수강생들이 밤 10시까지 남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육을 담당한 강사님이 항상 강조하던 말이 있다.
취업준비는 6개월 뒤에 해도 절대 늦지 않으니 지금은 스스로 인정할 정도의 실력을 쌓으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자소서를 쓰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사님의 말이 100번 옳았다.
6개월의 과정을 마치면서 IT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배운 내용을 소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롱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분야였다. 어떤 일이든 기본기가 중요한데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핑계로 스스로 인정할 정도의 실력을 쌓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과정이 끝나니 갑자기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더 이상 8시간의 수업을 받을 필요도 2시간의 거리를 왕복할 필요도 없었다. 6개월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처럼 일어나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코딩 공부를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관심 있는 회사를 찾아 지원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30개 회사 지원, 5개 회사 최종면접, 1개 회사 합격
다시 도전한 취업시장에서의 최종 성적이다. 공고가 뜬 모든 회사에 지원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회사 위주로 기업 분석을 했다. 급한 마음에 아무 회사나 지원했다가는 입사 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취업 준비를 할 때보다 처참한 성적에 초반에는 마음고생도 많았다. 지원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이 좋게 봐주었는지 당시에는 서류 통과 비중이 거의 50%에 육박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과 비전공으로 IT분야에 지원한 영향으로 서류 통과 비중은 30%로 줄었다.
나는 100개를 써도 서류 통과가 안 된다
고 말하는 취업준비생들도 있다. 이런 지원자들이 돌아봐야 할 부분은 기본적인 스펙과 자기소개서다. 스펙이라 해서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고 공모전에서 입상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지원한 회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어필할 수 있는 소재는 있어야 한다. 물론 관련 자격증과 공모전 경험이 있으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지원할 회사의 연혁, 주력상품, 매출 추이, 최근 이슈,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장기 전략 등을 고려해서 작성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자기소개서 하나를 쓰는데 복사 붙여 넣기를 활용해서 몇 시간 만에 뚝딱뚝딱 지원서를 제출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초안이 완성되었다면 그것을 바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퇴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직접 1~2회 수정을 하고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검토를 받으면 좋다.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이 없다면 타 업계라도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도 좋고 정 없으면 같이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라도 첨삭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우 10번의 퇴고를 거친 자기소개서가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쏟아지는 채용 공고에 아무 생각 없이 복사 붙여 넣기로 '묻지마 지원'을 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특별히 관심 가는 분야가 없어서 모든 회사에 지원해보고 싶다면 최소한 지원동기만큼은 회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자.
5회의 최종 면접을 경험하면서 멘탈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특히 한 주에 2번의 최종 탈락 소식을 접했을 때가 절정이었다. 2번째 탈락 소식을 금요일 오후에 접했는데, 그 주 주말에는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당사의 최종 면접에서 합격하셨습니다. 우선 축하드리고요. 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통해 안내드리겠습니다
집에서 집중이 안 돼서 카페에서 코딩을 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순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2015년에 놀이공원에서 나무로 된 롤러코스터를 탈 때도 이 정도로 심장이 뛰지는 않았다(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편이다)
처음 국비지원 학원에서 Hello World!라는 문구를 출력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퇴사를 했던 그 순간보다 먼저 출력창이 떠오른 걸 보니 개발자로서의 시작이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망 분야에 '문과'를 써넣으면서 문돌이의 삶을 살았다. 10년이 넘은 지금 IT 개발자로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구불구불 많은 길을 돌아왔고 어떻게 보면 낭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에 연설은 지루한 것'이라고 규정했던 필자도 10번 이상 반복해서 들었던 연설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보다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은 말은
'connecting the dots'이다.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점들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도형이 된다. 문돌이로 살았던 모든 경험들이 IT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돼서 합격 당일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끝.
## 다음 편에는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는 엑셀 파일에 대해 부록 형식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간단한 양식이지만 취업 준비 일정을 조율하고 자기소개서 작성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팁이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