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퇴사일의 아침은 평소와는 달랐다. 일어난 시간은 5시 50분. 평소와 같은 시간이 일어났는데 이상할 정도로 개운하다. 숨이 턱턱 막히던 월요병의 증상도 없다.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전에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통근버스 기사님의 영혼없는 인사도 왠지 친절하게 들린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어색한 기분이 든다.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유체이탈을 해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도 갑자기 사무실이 어색하다.
회사 건물 맨 위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한 분들을 만나 인사를 했다. 퇴사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다. 역시 회사의 소문은 LTE급이다. 이 큰 회사에서 일개 사원의 퇴사 소식이 쫙 퍼져있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임직원 카드와 사원증을 반납했다. 퇴사 후에는 임직원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고 카드는 반으로 잘라 사원증과 함께 제출했다. 사원증을 제출하면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임시 사원증을 따로 받아놔야 한다. 전례가 있었는지 인사담당자가 미리 알려줬던 내용이다.
자리로 돌아오니 포맷을 돌려놨던 노트북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파일 삭제는 이미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예 밀어버렸다. 텅텅 비어 있는 바탕화면처럼 회사 생활도 끝이다. 전화기 선을 뽑고 PC 전원 케이블을 빼는 동안 선배들이 수고했다는 격려를 해주었다.
전산실에 전화와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니 책상이 휑하다. 개인 짐을 미리 집으로 보냈더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제 가장 큰 일이 남았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퇴장할 것인가'
노트북 반납 전에 포털 사이트에 ‘퇴직일 퇴근시간’을 검색했다. 여러 케이스가 있는데 회사 분위기에 따라가라는 조언이 가장 많다. 우리 회사 분위기를 모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점심을 먹고 조금 지난 시간, 멘토 선배가 자리로 와서 이제 인사하면 될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팀장님 이하 모든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멘토, 사수 선배가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었다. 버스를 타고 집이 아닌 계열사로 향했다. 유선으로 소식은 전했지만 그래도 직접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업무 특성상 회사 내 다른 팀보다 계열사와 연계한 업무가 많았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분명 만날 기회가 있을 거다”
선배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회사 생활이 끝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집에 가기 전에 부모님의 운영하는 가게에 들렀다.
“그동안 고생했다. 좀 쉬면서 하고 싶은 일 준비해라”
서운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의 말에 감사했다. 입사할 때 이제 한 시름 놓았다는 부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다시 마음의 짐을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2배로 보답하기로 다짐했다. 퇴사일의 총평을 하자면 아쉬운 마음보다는 시원함이 더 크다. 좋아서 방방 뛸 정도의 느낌은 아니지만만 후련했고 ‘평일 아침에 늦잠을 자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사소한 고민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