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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Feb 08. 2016

영원히  고통받는 청춘의 명절

#문돌이 #퇴사결심 #100일

    민족 대이동의 명절이 다가오면 유독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은 수험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명절 잔소리를 피하지만 20대 청춘들은 친척들이 던지는 비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취업 준비 중임을 뻔히 알면서도 취업은 했냐고 묻는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건지 의문이다.  


    일 년에 2~3번 만나다 보니 마땅한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 6개월 전에 물었던 질문을 또 하는 것일까? 아니면 걱정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자녀가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취업에 성공했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실 부모님이 여기저기 소식을 전했을 거다. 소식이 없다는 건 십중팔구 6개월 전과 같은 상태라는 의미다.  

    취업을 하면 한 고비는 넘겼다. 이제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을 차례다. 남녀 불문하고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도 친척들은 취직을 했으니 빨리 결혼을 하라신다. 결혼은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니다. 전세 대란에 회사 근처에 원룸 전세 하나 구하지 못해  새벽같이 일어나 통근을 했다. 집에 손을 벌릴 수 없는 집안 상황을 아시면서 하는 말씀이라 그 의중을 알 길이 없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32살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3년째 같은 패턴이다. 32살은 3년 전에 정한 가상의 결혼 시기이다. 20대에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생각과 30살이  머지않았다는 두려움에 2살을 더했다. 항상 같은 대답을 하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실 줄 알았던 판단은 오산이었다. 오히려 딱 잘라 말을 했더니 다른 패턴의 질문이 생겼다.

  

  “나중에 아이는 몇이나 낳을 거니? 

  아직 생각은 없지만 결혼 후에 다시 고민할 예정입니다. 

  

    아직 생각이 없다는 한 마디에 네버엔딩 토론 시작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 아이는 둘 이상 낳아야 한다는  첫마디에 요즘 둘 키우려면 맞벌이도 부족하다는 반대 의견이 충돌했다. 결말은 나지 않지만 이번 토론도 아이를 둘 이상 낳아야 한다는 진영이 우세했다. 작은아버지의 존재 때문이다.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던 삼촌은 결혼 후 두 아이의 아버지로 레벨업 했다. 최근에는 수십 년 피운 담배까지 끊으며 좋은 아버지 칭호도 얻었다. 너도 막상 결혼하면 작은아버지처럼 마음이 변할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토론이 끝났다.  


    친척들을 만난 자리에서 퇴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말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겨우 탈출한 취업은 언제 하니? 단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방향이 전해지면 그때 가서 다시 소식을 전하면 된다. 


    학원 등록 시에는 몰랐는데 시간표를 보니 명절에도 영어 수업을 그대로 진행한다. 친척들이 던지는 비수를 어떻게든 피하려는 청춘들의 심리를 이용한 학원들의 전략이다. 핑계가 필요한 청춘들과 추가 매출을 올리고 싶은 학원의 니즈가 만나 명절에도 특강이 열린다. 특강이란 이름 하에 비싼 수강료를 받지만 남들이 놀 때 따라잡겠다는 취업 준비생의 의지로 강의장은 꽉 찬다. 명절 음식만은 못하지만 학원에 가면 간식까지 준다.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하려던 분위기는 학원에 가야 한다는 필자의 선언에 흐지부지 됐다. 이후에 부모님과 친척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학원 말고 호황을 누리는 곳이 또 있다.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카페는 만석이었다. 최소 200명은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가 단 하나도 없다. 짐을 싸는 듯한 손님의 주변을 얼쩡거리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구석 자리 콘센트가 있는 자리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청춘들로 가득하다. 책을 읽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우니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데 대부분 명절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고 한다.

    주문을 하며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었다.  


 명절에도 일을 하시네요 

 큰 집에 가봐야 좋은 소리 듣기 힘들고 명절에 일하면 시급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더 바쁘시겠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손님이 꽉 차기는 했는데 대부분 오래 앉아 계셔서 회전은 평소보다 적은 편이에요. 


    책을 읽으며 지켜본 결과 아르바이트생의 말대로 잠시 앉았다 가는 사람보다는 카페 죽돌이, 죽순이가 대부분이었다. 커피 원가에 비하면 수십 배의 돈을 냈지만 단돈 4,000원으로 명절의 평안을 얻는다면 남는 장사다.  


    친척 어른들이 굳이 비수를 던지지 않아도 취업, 결혼, 육아는 큰 고민거리다. 명절만이라도 맘 편하게 명절 음식을 즐길 수는 없을까? 명절 대화 금지어를 만들어 시행하는 법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 대표 키워드 취업, 결혼, 육아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는 것이다. 만약 키워드를 말하면 집안의 발전을 위한 벌금을 내는 방식도 좋겠다.  


    금지어 때문에 할 말이 없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멀뚱멀뚱 TV만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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