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언제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의 영향인지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새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등산을 하다가 문득, 이제 연말이구나 알아챈다. 그렇게 2020년을 되돌아본다. 이게 올해의 마지막 등산이라는 의미 없는 의미부여를 하면서.(의미부여는 본디 아무 의미가 없는 대상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거려나?)
2020년이 많은 이들에게 잔인한 해였을 것이다. 나에겐 아직까지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없었지만, 올해는 모두에게 험난한 해였고 나도 넘어갈 수는 없었나 보다. 사랑하는 동물 가족이 갑작스럽게 죽었고, 나의 20대를 바쳤지만 나를 옭아매던 인연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했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에 올해만큼이나 안 좋은 시기는 없었겠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환경, 사람들 그리고 다니던 직장까지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렇게 큰 용기나 결단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내가 몸담고 있는 환경이 나를 피폐하게 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직장에서도,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그 외의 시간들-지하철을 타거나 슈퍼에서 장을 보거나 은행을 갈 때에-도 모든 게 버거웠다. 이 모든 것을 차단해버리기 위해서는 그 현장을 뜨는 수밖에. 귀국밖엔 없었다.
귀국하고 1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쉽지 않았던 올해가 끝나가는 지금 내 마음은 어떤가? 아직까진, 평화롭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되었고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월요일이 싫지 않고 일요일도 수요일만큼 평온하다. 잠이 달고 밥도 더 맛있다. 술이나 초콜릿같이 내 정신적 허기를 채우던 것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와인은 예외다).
삶이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귀국을 결정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건, 내게 인생을 사사건건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큰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키는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속해 있던 큰 그림에서 나만 쏙 끄집어내서 다른 곳에 뚝 떨어뜨려놓을 수 있다.
매일 똑같지만 부지런히 살아내는 일상도, 새로운 것과 낯선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중요하다. 단지 내가 느끼는 감각에 민감해지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등산을 하다가 문득, 지금 이 산속에서 내가 느끼는 평안함이 참 소중했다. 내가 이걸 찾아왔구나. 그저 매일매일에 묻혀 살아왔다면 얻을 수 없었을 이 평안함, 그리고 내 삶을 내 생각과 힘으로 주도한다는 뿌듯함. 다시 내 결정을 번복하거나 후회할지라도 아쉽진 않을 것 같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