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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May 27. 2021

사내정치에 희생당한 팀장님

첫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장님은 내가 만난 상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당시 40대 중 남자이었는데 자유분방한 꽁지머리와 웃을 때 사람 좋은 얼굴, 그리고 특유의 쿨한 성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재무회계 부서는 으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데 팀장님이라고 소개받은 분이 웬 꽁지머리의 중년 남자분이 '여기 팀장님 좀 독특해' 라며 집에 가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분은 그 후로 내가 만난 상사 모두를 통틀어 가장 리더십 있고 멋있는 팀장님이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났고 타 부서와의 관계가 원만하여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 나이 의 많은 팀장님들처럼 회식 자리와 소주를 좋아하셨지만, 술을 강요한 적은 없었다.


꽁지머리 팀장님은 자신의 일은 완벽하게 하되 직원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지 않는, 적당한 방임주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는 나섰지만 지시가 아닌 서포트를 해주었다. 실적을 내려고 욕심을 부리거나 직원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위에서 내려오는 과도한 지시는 자신의 선에서 쳐내었다.


꽁지머리 팀장님은 합리적이고 능력 있으며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나,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회사라는 조직은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꽁지머리 팀장님의 한국 직급은 부장이었지만, 한 부서를 이끄는 장이었고 그의 직속 상사는 회사의 외국인 CFO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이사나 상무들과 회의를 할 때도 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어느 날 전략회의에서 전 부서를 총괄하는 상무와 꽁지머리 부장님 간의 의견 대립이 발생했는데, 서로 양보가 없이 팽팽하게 맞서 미팅 자리에서 긴장감이 흘렀다고 한다.


영업에서 기반을 쌓아온 상무님은 세일즈 활성화를 중시하고, 재무를 담당하는 부장님은 회사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회사 상황을 더 잘 알고, 옳은 말만 하는 부장님이 상무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 본사의 결정에 따라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뀌게 되었고 CFO 또한 임기가 다 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상무가 일시적으로 총지휘권을 맡게 되었다. 만약 꽁지머리 부장님이 정치적인 사람이었다면, 상무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조금 더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를 위해 더 옳다고 생각한 방안을 소신 있게 주장했고 상무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리고 결국, 로운 대표이사를 포섭한 상무의 입김으로 승진에서 밀려났고 얼마 후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이때 알게 되었다. '실력'만 있어서는 회사에서 인정받거나 살아남가 어려움을. 아무리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평가절하가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여우 같은 곰 살아남지만 곰 같은 여우는 살아남기 어려운, 그런 게 회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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