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고등학교 생활기

by Mooner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이수 중 OCEAN(https://www.ocean-intl.org/)이라는 고등학생대상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엄마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서 SLEP이라는 영어 시험을 쳤고, 합격 점수가 나와서 나의 교환학생지원 과정은 순조로웠다. 그리하여,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7월에 샌디에고에서 1달 조금 넘게 어학 연수를 하고 애리조나 피닉스의 한 호텔에서 세계 각국의 교환학생들과 2박 3일 혹은 3박 4일 정도의 프로그램 워크샵을 같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홈스테이가 배정이 되어서 각 가정으로 보내졌다. 처음에 나는 40대 전후의 의사 남성 분이 호스트였다. 그런데, 나 말고 말레이시아 혹은 태국 출신의 학생이 같은 호스트로배정이 되었다. 당시, 나는 “매우” 철이 없었다.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그 학생은 프로그램 워크샵 당시 내가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다른 한국 학생들이게 우스개소리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나와 같은 집에 배정을 받은 것이다. 의사호스트는 재정적으로 여유로워서 인지 2층 집에 혼자 거주 했고, 처음내 방은 티비, 침대 심지어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말 오전에 쇼핑을 가기로 했는데, 늦잠을 잔다 던가, 같은 집에 있는 다른 학생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등, 결정적으로호스트 컴퓨터에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해서 컴퓨터에 말썽을 일으키는 통에 결국 호스트는 프로그램 매니저에게 나와 함께 지내고 싶지는않다고 통지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첫호스트 집에서 1주일 채 있지 못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 지역 담당자 집에서 며칠 기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다른 호스트에 배속되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나 말고 다른 학생으로 브라질 출신 이궐이 있었다. 이홈스테이에는 이미 5명의 가족 구성원에 나와 이궐까지 총 7명이한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학교를 갔다가집에 오면 우리의 방이 있는 2층에 특정 시간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집안 규칙. 그리고 호스트 집 아주머니가 설탕과 관련된 병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로인해서 가끔 매우 신경질 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하셨는데. 나의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 중 5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해서 소변을 보고 변기시트를 내려 놓는 것을 깜빡하지 않은 것과 같은 여러 집안 규칙을 어긴 통에 결국 그 집에서 마저 3달좀 못 있어서 내쫓겨 나면서,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함께 동거동락했던 이궐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이궐의 경우에는 하숙 구성원들의 불합리한 점들 같은 것들을 기록해서 이를 홈스테이 프로그램 지역 담당자에 어필하는과정을 통해서 다른 홈스테이 가정으로 배정이 되기도 했다.


귀국하고, 미국으로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희망했으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이미 J1비자가나왔기 때문에, 이게 만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 유학생 비자인 F1비자를받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12월 정도에 한국에입국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캐나다는 아마 바로 1월에도 들어가서고등학교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고등학교1학년 2학기 과정부터 벤쿠버 Delta 지역에 있는 Seaquam 고등학교란 곳에 가서 유학을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1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White Rock 이라는 미국과 접경한 국경지역에서 공부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당시 가디언과의 판단 하에 고2, 11학년부터는 Earl Marriott 이라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시에콤에서의친구들과는 학기가 거의 끝나 갈 때 즈음에야 친해졌는데, 조금 더 일찍 친해졌으면 전학을 안 갔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싶다.


벤쿠버에서 두 번째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영어를 익히고, 소위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공부, 공부, 공부에 몰입을 했다. 현지학생들하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인지, 아니면 대학교 입학 자소서에 교내 활동으로 한 줄이라도 더 적고싶어서 였는지, 럭비를 2학기 동안 하기도 했다.


한국 학생들은 어디를 가나 있기는 있는 듯싶다. 얼마나 많이 있는 지가 화두이지. 두 번째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처음에는 한국 국적의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러나, 내가 점점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중이 되었는데, 같은 학교 친구들과 관계적인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성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을 잘 자각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나의 모든 즐거움 같은 것은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서 인지, 당시 참 많이 모났었다. 그래서,고3 2학기는 도무지 학교에서 할 형편이 안되었다. 번아웃되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야할까? 영어 수학 화학 같은 주요과목들을 내가 이미 다 이수해서, 당시 화이트락의 교육청인 36구 Surrey교육청에 수소문을 해보니, 온라인으로 학점을 채워서 졸업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마지막 학기는기타와 무슨 또 다른 온라인 수업을 한국에서 수강함으로써, 나의 고3은그렇게 막이 내려진다. 생각해보면, 캐나다에서 미국 수학능력시험인 SAT도 보랴, 캐나다 주요 과목 주정부시험인 Provincial Exam 보랴. 수고했다 당시에 나님아. 그리고, 미국 대학교는 각 학교별로 지원을 했는데, 어떤 학교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 추천서를 쓰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쪼록10군데 넘는 학교에, 지원서 비용이 5만원 안팎을 비싼곳은 10만원 가까이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 지원해서, 인디아나 블루밍턴,뉴욕 주립대, 애리조나 주립대 등에 합격을 했는데, 최종적인내 선택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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