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말이라는 건 참으로 오묘하다. 글, 그림, 영상과 같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한데도 우리는 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 어떤 표현 방법들보다도 말은 우리가 자주 접하고 많이 접하며 쉽게 접하는 방법일 것이다. 방 안에 혼자 있을 때의 독백, 가족이나 친구와 일상적으로 나누는 수다, 연인과의 은밀한 속삭임과 같은 사적 말하기에서부터, 효과적인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당사자끼리의 토론, 청중 앞에서 무언가에 대한 장점을 칭찬하는 연설, 법원에서 정당함을 주장하는 변호를 포함한 공적 말하기까지 말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이렇듯 말이 발화되는 범주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된 특징이 있으니 바로 말은 기본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인 범주에서든 공적인 범주에서든 말은 곧 생각의 표현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생각을 소수이든 다수이든 간에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수용가능성을 전제한다. 말에 담긴 나의 생각을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가. 이것이 말이라는 요소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수용가능성은 곧 말의 설득력에 달려있다.
다양한 기술서가 범람하는 시대지만 설득의 기술에 관해 수많은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말하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설득의 기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기술 중 하나인 셈이다. 국제적인 협상은 물론 회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학교에서의 과제 발표, 심지어 일상 속에서 견해 차이를 좁히는 일까지 설득력 있는 말하기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설득의 기술은 어떻게 습득하는가. 어떻게 말해야 말 잘한다고 소문날까?
음식점에서도 원조를 따지듯이, 지금 시대에 난무하는 설득에 관한 이론과 책에도 원조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수사학』이다. 원래 수사학이라는 학문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들이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서 유래했다. 당시의 소피스트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웅변학원 강사와 같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법정이나 정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말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이전 시대에도 소피스트들의 ‘말 잘하는 기술’에 대한 텍스트는 다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플라톤(Platon)을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은 소피스트의 수사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이유는 소피스트의 수사학이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고 명료한 진리를 통한 설득이 아닌 화려한 언변을 통한 선동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플라톤에게 수사학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그저 속임수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견해에 반대해 수사학을 하나의 유용한 기술로 여겼다. 철학자들이 비하하고 멸시한 수사학이라는 분야가 진지하게 탐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까지만 해도 수사학을 체계화한 사람이 없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수사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정리해 책으로 펴낸 셈이다. 그 결과물인 『수사학』에서 그는 수사학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첫째, 여태까지의 설득의 기술은 진정한 의미의 기술로써 활용되지 못했고 그저 우연이나 습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 설득 과정에서 청중의 개인적 이익이나 감정이 개입되기 십상이기에 이를 잘 컨트롤할 수 있도록 이론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학을 절대불변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수사학에서는 진리를 포함해 진리와 유사한 것이라면 완벽한 진리가 아니더라도 설득의 재료로 삼는다. 청중들은 진리와 유사한 것을 접해도 진리를 접한 것처럼 반응해 설득당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사학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설득의 기술이다.
설득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 두 가지다. 바로 증거와 기술이다. 증거는 기술적으로 고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실적인 요소들인데, 우리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줄 증언이나 자백, 작품 등을 일컫는다. 증거는 설득의 기술을 완전히 연마한 사람이라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아무리 잘한들 없는 목격자의 증언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그저 증거가 우리에게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설득의 두 번째 도구인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을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한다. 로고스(Logos)와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가 그것이다.
로고스는 말 그대로 논리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담론의 증명적 가치와 관련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적절한 근거를 들어 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아무런 근거나 논리 없이 일방적으로 나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말하기는 설득에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로고스는 듣는 이로 하여금 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혹은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설득의 기술에서 고려해야 할 두 번째 요소인 에토스는 웅변가의 전문성이나 성격을 칭한다. 우리가 질병과 관련해서 의사의 말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질병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의 조언에 설득당하는 이유는 부모는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화가가 나의 질병을 진찰하고, 원수가 나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들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설득의 정도는 발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에 대한 청중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토스는 정념, 즉 감정이나 감성에 관련된 개념이다. 말은 듣는 이의 감정에 거슬리지 않아야 설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탄탄한 메시지도, 시쳇말로 싸가지 없게 전달하면 듣는 이에게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는 기술의 두 번째 요소인 에토스가 확보되었을 때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나에게 격양되고 강요하는 듯한 말투로 조언하면 그 말에 따르기 싫어진다. 특히 부모들의 설득이 자녀에게 통하지 않을 때 그러한데, 대다수의 경우는 부모가 자녀의 파토스를 고려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정리하자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 어떻게 듣기 좋게 말하는가에 대한 노하우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이를 기초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웅변술을 활용하는 장소인 의회, 광장, 법정에서 각 장르에 맞는 설득의 기술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여러 가지 팁을 전수한다. 논박하는 방법, 듣는 이에 따라 어조를 바꾸는 법, 오류를 피하는 방법, 은유나 비교법과 같은 다양한 표현법, 문답법, 유머 등 그가 전하는 팁은 여전히 유용한 것들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간헐적으로 소개되는 팁 때문에 유명한 게 아니다. 설득에 관한 책 중에서도 그의 『수사학』이 원조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가 설득이라는 분야에서 로고스 외의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는 데 있다.
로고스, 즉 말의 논리는 플라톤 철학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다. 설득이나 발화에서 진리 도출을 위해 논리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논리적인 측면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중요한 설득의 요소인 누가 말하는가, 어떻게 듣기 좋게 말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도외시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고지식함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인간의 내면에는 이성 외에도 감정이 끊임없이 작용한다. 따라서 청중들은 진리처럼 보이는 것을 진리가 아님에도 믿고, 원인으로부터 거짓 추리를 일삼아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하며, 웅변가가 제시하는 관점에 따라 문제를 이렇게 보기도 저렇게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웅변가는 이런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 자신의 생각을 부풀려 전달할 줄도 축소해 전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맞는 말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청중의 감정이나 말하는 사람의 자세도 맞는 말만큼 중요한 설득의 요소인 것이다.
우리는 맞는 말만 한 사람의 대표적 예시로 소크라테스(Socrates)를 들 수 있다. 그는 아테네에서 국가의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부도덕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물론 기저에 정치적인 힘이 작용해 그를 법정에 세운 것이지만, 어쨌거나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한다.
그의 법정에서의 최후 변론을 기록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어보면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맞는 말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말의 논리적 흐름이나 체계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하는 데에만 집중해 청중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은 모두 논리적인데, 그가 듣는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니 그의 말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청중들에게 자신의 말을 흡수시키지 못해 사형을 당하고 만다.
앞으로 우리도 소크라테스처럼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경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떠올려 보자. 우리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칠 것, 말하는 스스로가 타인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될 것,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고려해서 말할 것.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설득의 기술은 한층 발전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동부 작은 도시국가인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난다. 어릴 때부터 후견인의 후원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후, 17세에는 아테네로 건너가 플라톤의 제자가 되어 수학한다.
플라톤의 학교 아카데미아(Academia)에서 정치이론, 형이상학, 인식론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한 그는, 플라톤이 죽자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이후 세계를 지배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친다. 나중에는 아테네로 돌아와 교육기관 뤼케이온(Lykeion)을 설립해 제자들을 기르며 플라톤 이후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플라톤의 제자임에도 스승과 반대되는 면을 가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 세계의 반영인 현상계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그 결과 형이상학, 문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수사학, 천문학, 생물학 등 우리 주변 것들에 대한 수많은 학문을 섭렵한다. 그의 학문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추천도서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HUE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