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교환일기 제 15편_영에게
영에게...
안녕 영!
오늘은 오랜만에 눈이 내렸어.
거리에 소복이 눈이 쌓였고, 그걸 보는 나도 어쩐지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오늘은 작년 발리 여행에서 만난 J와 눈 오는 서촌 거리를 따라 걸었어.
찬 바람에 손이 꽁꽁 얼었지만 J와 나눴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영에게도 공유하고 싶었어.
우리는 중정이 있는 한옥 카페에 들어가 다과를 먹으며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어.
J는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앞으로의 것이 아닌 다름아닌 지금이라고 말했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오롯이 느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 번 깨달았어.
대화를 한 차례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가며 걸었던 서촌의 거리는 카페를 들어가기 전보다 더 아름다워보였어. 발을 디딜 때마다 얕게 쌓인 눈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것도, 귀여운 뜨개옷을 입고 하얀 머리가 된 나무들을 감상하는 것도, 거리를 지날 때마다 나는 원두향과 정겨운 음식 냄새도. 이 모든 감각이 좀 더 선명하게 느껴졌어.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영이 지난 번 편지의 말미에 내 새해의 목표가 뭐냐고 물었기 때문이야.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보다 내 시간을 소중히 쓰고 싶어. 순간을 더 깊게 즐기고 싶어.
작년의 나는 고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물론 그 고민들이 헛되리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답을 찾은 것도 아니었거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질 것인가, 나의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앞으로 30대의 초반을 어떻게 보내야하지? 라는 고민을 하며 나를 갈림길 위에 세워놓았어.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세울 계획과 목표도 완전히 달라질거라 생각했어.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갈림길이라 부르던 곳이, 사실은 꼭 서둘러 건너야 할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떤 선택을 하느냐보다, 내가 가고 있는 길 위에서의 행복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고. 그래서 올해의 나는 한 가지 답을 정해두지 않으려 해. 다만 지금의 나에게 솔직하고, 오늘의 시간에 성의를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눈이 내린 서촌의 거리처럼, 이유 없이 아름다운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세운 올해의 목표야.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선택들을 주저없이 하고, 그것들로 내 시간을 채워나나가고 싶어.
그래서 그리지 않던 그림도 다시 그리고, 프랑스어도 좀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영처럼 나도 올해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마음껏 몰두하며 살아가고 싶어.
2026년이 우리 둘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한 해가 되길 바라.
Happy new year!
그럼 이만 총총.
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