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독일에서 영주권을 받던 날
내가 생각했을 때
독일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거주 비자를 신청하고 연장할 때다.
특히 외국인청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문의 메일에 대한 답변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은
비자 만료일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을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든다.
요즘은 각 도시별로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을 해야
비자 신청 접수조차 가능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독일 행정 시스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이럴 때 가장 크게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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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는 두 번의 비자 연장을 진행하면서
담당자의 메일 회신도 비교적 빠르게 받았고
예약도 수월하게 잡을 수 있었다.
오픈런을 해야 하는 상황은 겪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운이 좋았던 편이다.
아니면 내가 살던 지역이 대도시가 아니어서
조금 더 수월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큰 문제가 생길 법한 시기에도
이미 비자 연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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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을 받기 전까지
거주허가증에는 항상 한 장의 종이가 함께 붙는다.
바로 ‘Zusatzblatt’.
이 종이에는 현재 나의 체류 상태가 상세히 적혀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서류다.
예를 들어,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이 종이에 현재 근무 중인 회사 이름이 명시된다.
학생이라면
주당 몇 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지도 적혀 있다.
즉, 이 종이에 적힌 조건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결정된다.
직장인의 경우
기재된 회사에서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직도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독일 정착 초기 몇 년 동안은
이직이나 퇴사를 조심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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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생활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거주허가증 유효기간을 확인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항상 만료일을 신경 쓰며 살았다.
프랑크푸르트 근교 에쉬본에서 약 1년 반 정도 일했을 때,
기존 비자 만료일까지 약 6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외국인청에 메일을 보내
영주권 신청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다행히 답변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신청에 필요한 서류와 준비물 안내도 함께 받았다.
필요 서류를 모두 준비해 이메일로 제출하고
방문 예약까지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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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청 방문 예약 날짜는
베를린 여행 중간에 잡혀 있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잠시 멈추고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내려왔다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했다.
방문 당일,
담당자와 서류를 하나씩 확인하고
수수료까지 모두 납부했다.
하지만 추가 서류를 요청받았다.
그날 바로 영주권 카드를 받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추가 서류는
집주인이 작성해 주면 되는 간단한 것이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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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서류를 제출한 뒤
잠시 그 일을 잊고 지내고 있을 때쯤,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당신의 영주권 카드가 발급되었습니다.
외국인청 운영 시간에 방문하여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우와”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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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회사에 반차를 내고
외국인청으로 향했다.
카드를 수령하고 나오는 길,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는데도
하늘이 유난히 더 맑아 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겨우 참고, 조금만 흘렸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걸 받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버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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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영주권을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걸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겠구나.”
거주에 대한 불안,
비자에 대한 압박,
그 모든 것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당분간은 외국인청 안 가도 된다.”
이 문장이 이렇게 기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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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을 받고 나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엄청난 혜택’이 있다기보다는
삶의 안정감이 가장 큰 변화라는 것이다.
여권 유효기간만큼 거주 가능
출입국 절차가 비교적 간단
취업 시 제약이 줄어듦
무엇보다 거주에 대한 불안이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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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점만 놓고 보면
엄청나게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드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불안했던 시간들을 지나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확신’ 같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