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독일에서 처음 알게 된 사회 안전망
독일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던 순간에도
나는 사장 부부에게 실업급여를 바로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왜 그 단어가 바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 회사에서 관리팀으로 일했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 같다.
다행히 새로운 거주허가증도 받은 상태였다.
권고사직 서류를 받은 다음 날, 나는 바로 노동청으로 갔다.
실업자 등록과 구직자 등록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받은 뒤
집에 돌아와 온라인으로 실업급여 신청까지 마쳤다.
하지만 신청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구글을 검색하고, 이미 실업급여를 받아본 선배 언니에게 물어보며
하나씩 작성해 나갔다.
이후 추가 서류는 고용주가 노동청으로 보내야 하는 서류라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 요청 메일과 우편을 함께 보냈다.
다행히 노동청 담당자가 배정되었고
실업급여 신청도 문제없이 승인되었다.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경우였기 때문에
나는 다음 달부터 바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독일도 많은 행정 절차가 온라인으로 가능해졌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노동청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대부분 처리가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독일에서 두 번째 실업급여 수급 신청이 승인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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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와의 첫 상담 일정이 잡혀 다시 노동청을 방문했다.
담당자는 내 이력서를 보며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등을 물었다.
나는 독일어보다는 영어와 SAP를 배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생각은 달랐다.
외국인이 독일에서 취업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일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 독일어 수준으로는 취업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독일어 수업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 수업은 노동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 개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출석 관리가 굉장히 엄격하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학원이 많지 않아서 수업 자리는 금방 마감되기도 한다.
나 역시 급하게 집 근처 어학원 몇 군데에 연락했고 그중 한 곳에서 레벨 테스트를 받은 뒤
B1-B2 von Beruf 과정을 듣게 되었다.
역시 수업에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로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나는 그 분위기가 꽤 힘들었다.
수업은 늘 시끄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시험 날짜가 가까워지자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럼에도 무사히 시험을 마쳤고 그 사이 새로운 회사에도 계속 지원서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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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생각하지 못했을 때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은데…”
“이대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내 독일 생활이 여기서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업급여 승인을 받고 난 뒤 마음의 부담이 조금 내려갔다.
특히 매달 나가는 집세는 생각보다 큰 고정 지출이었다.
다행히 이전에 받던 월급 평균의 60%가 실업급여로 1년 동안 지급되었다.
물론 완전히 안정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노동청에서 관리하는 규정도 꽤 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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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휴가나 해외여행은 3주 이상 불가능했다.
여행하기 딱 좋은 시기였지만 나는 여행 계획은커녕 한국에도 갈 수 없었다.
만약 여행을 가고 싶다면 담당자에게 일정과 사유를 미리 알려야 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3주를 초과할 경우 초과된 기간만큼 실업급여 지급액이 줄어든다.
마침 한국에 있는 중학교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축의금만 보내고 멀리서 축하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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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직 활동을 계속하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전에 크레펠트에서 했던 것과 같은 업무였다.
이번에는 한국 교포 회계사가 운영하는 회계법인이었다.
면접을 본 뒤 이틀 후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근로계약서도 받았다.
나는 바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당당하게 노동청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며칠 뒤 담당자와의 미팅에서 근로계약서를 직접 보여주었다.
담당자는 나에게 “취업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과 함께 나의 실업급여 수급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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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오기 전까지 내가 실업급여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실업급여를 신청하면서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제도라는 것을 느꼈다.
독일에서는 스스로 퇴사할 경우 3개월 동안 Sperrzeit라는 실업급여 지급 정지 기간이 있다.
하지만 4개월 차부터는 다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독일에 오기 전까지 알고 있던 한국 제도에서는 자발적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고 들었었다.
물론 나 역시 한국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다
계약 종료 후 실업급여를 받은 경험이 있긴 했다.
그래도 독일에서 세금을 내며 일했던 만큼
이런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