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첫 유럽: Hallo, Deutschland

Ep. 5 독일에서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다.

by 무늬무니

[힘들면 돌아와라]


외로움이 극에 달했던 그 시점에

가족들과 영통을 자주 했던 시기였다.


아마 이 시기가 나의 첫 우울증이 찾아온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우울증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화면 너머 보여서

부모님은 늘 같은 말을 해주셨다.


“혜지야, 넌 혼자가 아니야. 가족들이 옆에 있어.

그러니까 너무 힘들면 돌아와도 된다.

무조건 버티는 게 다 좋은 건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나면 잠시 안심이 되었다.
숨을 고를 수 있을 만큼의 안정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외로움과 친해지지 못한 사람]


사람들은 말한다.
외로움은 늘 곁에 있으니 차라리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외로움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타국에서 가족 없이 혼자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익숙하지 않은 독일어로 행정 처리를 해야 하는 긴장감.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점점 움츠러들게 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작은 동굴 안에 가둬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끝나고 햇빛을 보기 힘든 계절이 이어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빛이 줄어들수록 마음도 함께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외로움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잠시나마 외로움이 적이 아닌, 조용한 동반자처럼 느껴질 때가.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우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인 것이 무서웠다.
방 두 개 있는 집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늘 북적였고, 언제나 누군가 곁에 있었다.

특히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하지 마라”라는 말을 더 많이 들으며 컸다.
그래서인지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스무 살이 되어 자취를 시작했지만 언니나 사촌들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
완전한 혼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에게 사회생활은 언제나 도전이었다.


그런 내가 독일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꽤 놀라운 일이다.

20대 중후반까지 나는 혼밥조차 어려웠다.

혼자 식당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내가 벨기에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식당에 들어가 혼자 초밥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조금씩, 혼자 있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가만히 있지 마라]


어느 날, 나는 인터넷에 ‘Tanzschule’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요가, 필라테스, 피트니스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춤이 더 끌렸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기 직전, 잠시 재즈댄스를 배운 적이 있다.
하루 종일 회사 일로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춤을 배우러 가는 날이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오늘은 어떤 동작을 배울지 생각하며 걷던 그 길.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크레펠트를 떠나 다시 프랑크푸르트 쪽으로 내려온 뒤, 나는 더 자주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카페에 가고, 마인강에 멍하니 앉아 햇살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특히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바빠졌고, 더 단단해졌다.

힘든 일이 찾아와도 예전처럼 오래 무너지지 않았다.

혼자가 되더라도 이제는 여유와 함께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힘들고 우울하다면, 일단 움직이자.

단 10분이라도 좋다.


사실 나도 일주일 내내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그래서 10분이라도 걷는다. 바람을 맞고, 빛을 보고, 숨을 크게 쉰다.


결국 나에게도 ‘외로움’이라는 친구가 생긴 셈이다.
이제는 이 친구와 조금 더 잘 지내보려 한다.


완전히 즐길 수는 없어도,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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