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첫 유럽: Hallo, Deutschland

Ep 4. 독일어를 못해서라고 생각했던 시간

by 무늬무니

Die Übung 연습, üben 연습하다


독일어 연습하기.
매년 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고 적어 넣던 목표였다.

하지만 바쁘다,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핑계로 그 목표는 늘 다음 해로 미뤄졌다.
그래서 누구보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늘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을 덜어보고 싶어 저녁 수업을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 퇴근 후 어학원으로 향했다.

하루 8시간 일하고 다시 수업을 듣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퇴근 준비를 서둘렀고, 기차를 놓칠까 봐 역까지 뛰어가기도 했다.
피곤함에 수업 시간에 졸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버텼다.

그때는 몰랐다.
이 언어가 나를 어디까지 흔들게 될지.


첫 독일 회사와 인연


그러던 중 예상하지 못한 제안을 받았다.
독일에서의 첫 이직 제안이었다.

회사는 독일인 세무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담당 세무사이기도 했다.
회계 결산으로 여러 차례 미팅을 하며 이미 얼굴을 알고 있던 사이였다.


그들은 한국 고객사를 담당할 한국인 직원을 찾고 있었고, 내가 이직을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안을 건넸다.

잠시 고민은 했지만,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연봉은 오히려 낮아졌고 지역 이동까지 해야 했지만, 나는 이직을 선택했다.

새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비자를 다시 신청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첫 독일인 동료가 생기다


비자가 새로 발급되고, 나는 독일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독일 세무·회계 업무를 어느 정도 익혔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영역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독일어로 소통해야 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다.

앞자리에 앉은 동료는 일부러 나에게 질문을 건네며 내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동료들의 표현을 유심히 듣고 따라 하며 하루를 버텼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외국어로 긴장하며 보낸 시간의 무게였다.

그래도 그 시기, 독일인들 사이에서 조금씩 어울리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책임감도 함께 커져갔다.


소통 부재, 그리고 균열


이직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직 당시 약속받았던 조건은 점점 흐려졌고, 휴가 사용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동시에 내 독일어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낮아졌다.
실수하는 것이 싫어 말을 줄였고, 그만큼 동료들과의 대화도 줄어들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원인을 독일어에서 찾았다.
조금 더 잘했더라면 괜찮았을까,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문제는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권고사직, 그리고 무너짐


어느 날 아침, 사장 부부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예상하지 못한 사직 통보였다.


사유는 동료들과의 소통 문제, 그리고 “업무만 한다”는 태도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짐을 챙겨 회사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울었다.


왜 나에게만 잘못을 묻는지,
이 모든 일이 정말 독일어 때문인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독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럼에도 남은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독일어의 구조와 흐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살기 위해 듣고, 버티기 위해 말하고,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던 시간들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외국어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과 관계,

그리고 나 자신을 계속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조금 더 조용히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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