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7살 정도 였을 때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무언가 내가 엄마에게 잘못을 했을거다. (그 이유는 아직도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음식을 쏟았건, 언니와 싸웠건.. 잘못을 했을거다.) 그래서 엄마는 너무나 분노한 목소리로 나롤 혼내며 파리채를 드셨다. 7살 어린 나이에는 파리채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 그 떄 어린 마음에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매를 피해 집 밖을 뛰쳐나갔다. 그리곤 아파트 현관 복도에서 울며 서성이다가 눈치 보며 1시간 정도 후에 겨우 집에 들어갔었다. 사실 그 당시 엄마가 아무리 무서워도, 파리채로 나를 열 대 스무 대 마구잡이로 때리지도 않으셨다. 고작해야 파리채로 등짝에 한 대 아니면 손바닥에 두 대 뭐 이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눈 딱 감고 맞으면 참고 없어질 고통인데 ...뭐가 그렇게까지 무서워서 나는 벌벌 떨며 집까지 나갔을까.
우리네 어릴 때 그랬듯, 아빠는 식구들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 하셨고 엄마는 전업주부로 알뜰살뜰 모으고 살림하며 우리 두 자매를 키우셨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전형적 경상도 스타일이셨다. 덕분에 집안일이나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 여기셔서 일절 도와주지 않으셨고, 덕분에 집에서의 모든 일은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늘 열심히 사셨고, 우리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셨다. 남한테 폐 끼치기 싫은, 법 없어도 사실 법한 우리 엄마인지라 딸들이 어디가서 욕 들어먹지 않도록 엄격하게 키우셨다. 그리고 엄마는 혹여나 딸들이 엇나갈까 딸들의 잘못을 잡기 위한 훈육의 도구로 파리채를 사용하셨다.
사실 솔직히 나랑 언니는 진짜 착하고 순종적인 딸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본격적인 my way는 대학교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때부터 엄마는 나를 그냥.. 내놓으셨다 ㅋ) 우리가 원래 개구지거나 통통 튀고 리드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파리채도 우리가 순종적으로 성향으로 정착하게 된 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우리에게 큰 소리로 화내는 게 무서웠고, 그 화가 심해져 파리채를 들기라도 하실까 두려웠다. 그래서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 애썼고 눈치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엄마에게 농담 반 진담 반 , "엄마가 우리 기를 다 죽여놓게 키웠다." 라고 했다가 또 한 소리 듣고....ㅋ
지금 나는 7살, 4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다. 내가 아들 둘이라니. ㄷㄷㄷ 너무나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지만, 정말 입 델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21세기, 아이들을 이해하며 받아주고 사랑으로 감싸면서 '나 전달법 (i-message)'로 '네가 그러니까 엄마가 속상해' 와 같은 방법으로 육아하도록 각종 육아서와 매체를 통해 세뇌된 나. 그래서 되도록이면 "안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가 속상하다" 로 부정의 표현을 하지만.. 성질이 어디 가나. 나도 모르게 속에서 욱할 때가 많다.
일로 와! 일로 와! 맴매 가져와!
언젠가 한 번, 큰 아이가 동생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그랬을 거다. (사실 어떤 행동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순간 나는 ' 이 아이의 나쁜 행동을 바로 고쳐야 할 때다, 늘 말로 하니 되지 않는 구나.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 고 생각했다. 그 때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포착된 효자손. 아이에게 효자손을 맴매라고 명시하고 잘못한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 했다. 체벌의 정당성을 상대에게도 인식시킨 후 효자손으로 아이 손바닥을 1대 때렸다. 겁에 질린 큰 아들. 한 대를 맞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때리면 정말 따끔하게 강도를 줘서 때리기에 장난은 아니었을거다.) 아이의 울음에 살짝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제 무서운 맛을 알았겠지?' 하는 마음도 컸다. 내가 매를 드는 기준은 명확했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매는 안 좋다지만 이렇게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때리는 건 괜찮을거야. 나 스스로 자위했다.
그 이후에도 큰 아이가 또 동생을 때린다. 그럼 나는 또 "너 때렸지? 맴매 가져와." 그럼 아이 표정은 사색이 되어 잘못했다고 울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 봐주면 다음에 또 그럴거야.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니까.' 라며 가져온 맴매로 아이의 손바닥 한 대 찰싹 때린다. 근데 맴매가 만병통치약일까? 엄마의 단호한 맴매의 무서움을 안 이후, 큰 아이의 동생을 때리는 행동이 정말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역시! 적절한 맴매는 괜찮아! 우리 어렸을 때도 다 맞고 컸는데 뭘!
사람이 참 그런 것이, 처음만 어렵지 그 이후로는 두 번 세 번 너무 쉽다. 내가 소리지르고 힘들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맴매만 들고 있으면 아이들이 바르게 행동하는 걸. 둘째가 밥을 돌아다니면서 먹는다. "맴매 가져와, 맴매 어딨니." 이러면 어느새 달려와 자리에 앉는다. 첫째가 개구진 행동을 한다. 그럼 나는 또 어김 없이 "맴매 가져와, 맴매 어딨니." 이러면 큰 아이도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실제로 때린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맴매 가져와, 맴매 어딨니" 라는 주문으로 아이들을 협박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7살 4살 두 남자 아이가 놀다 보면 꼭 몸으로 뒤엉키게 되고, 그러면 본의 아니게 자꾸 때리게 되나보다. 가만히 앉아서 놀면 되지, 꼭 공룡놀이, 대장놀이라고 서로 엉키고 때리고 해야하나. 처음의 맴매 약발도 안 통하는지, 다시 큰 아이가 동생을 때리는 횟수가 초반에는 줄어드는 듯 하더니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다.
다음에 또 동생 때리면 그 때는 두 대야!
사실 이렇게 말을 뱉고 나도 흠칫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큰 아이가 동생 때리는 건 꼭 고치고 싶었다. 그 정도 했으면 그냥 좀 때리지 말지, 어김없이 또 동생을 때렸고, 결국 나는 약속대로 2대를 때렸다. 그렇게 두 대를 때리면서, '두 대 정도는 뭐' 라고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그냥 모른체했다. 두 대를 때리고 나서 나는 또 이야기 한다. "다음에 또 동생 때리면 그 때는 다섯 대야!" 물론, 다섯 대를 때릴 생각은 1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겁을 먹고 행동을 고쳐주길 바랐을 뿐이다. 엄마의 그 말 속에는,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하렴!' 의 메세지가 더 컸다. 하지만 아이는 얼마 안 가 또 똑같은 행동을 했고,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큰 화와 함께 다섯 때를 때리고야 말았다. 한 대, 두 대를 맞고난 후 너무 아픈 아이가 무서워서 손을 다시 내지 못한다. 그저 두 손을 등 뒤로 감춘 채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했지만, 매정하게 나는 손을 굳이 끌어당겨 앞에 펼치고 철썩 때리고 말았다. 여기서 봐주면 엄마의 위신이 떨어질 거라는 오만한 생각 때문에. 결국 아이는 몸서리 치듯 울었고, 늘 마지막은 어줍잖은 나의 포옹과 " 그러니까 다시 그러면 안 돼. 알았어?" 이 말 뿐.
그 일이 있은 후, 애가 맴매 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갔고, 내가 맴매를 드는 시늉만 하면 정말 경기일으키듯 행동했다. 아이의 너무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내가 뭐하는 거지? 지금 이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내가 세상에서 누구보다 제일 사랑하는 아이를 내가 이렇게 매로 협박하며 쥐잡듯 잡고 있었구나. 어른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구나. 순간적인 깨달음이 왔다. 아, 이건 아니구나.
그래서 바로 아이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 나는 선포했다.
얘들아, 엄마가 약속할게. 앞으로 엄마는 절대로 너희에게 맴매를 하지 않을거야.
나는 아이들과의 약속은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입으로 뱉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절대로 때리지 않았다. 때리지 않으니 아이들이 맴매의 공포에서는 벗어났다. 이제 힐끔 엄마의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 행동을 그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곰곰히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나는 맴매 대신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아직 7살, 4살인 아이가 반성을 알까 싶지만, 니가 지금 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인지시켜주고 싶었다. 역시나 반성의 시간을 가져볼 때는 누구를 때리거나 아프게 할 때. 주로 서로 싸울 때.
잘못했으니 안방에 반성하는 자리에 가서 서 있어
반성하는 자리는 안방 문 옆, 벽을 보고 서 있도록 한다. 사실 이것도 맞는 것보다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반성하는 자리에 가서 서 있으라고 하면 엄청 싫어한다. 아마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진 아들에게, 벽 보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하는 자체가 곤욕일 것이다. 그래도 맴매를 가져오면 아이 얼굴이 겁에 질려 사색이 되었었는데, 반성하는 자리 가라 그러면 "저만 때린 거 아니에요." 등등으로 반항의 말을 남기고 간다. 아마 맴매를 드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데 반성하는 자리는 그 정도로 아이에게 위협적인 건 아닌가보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엄마한테 맞은 이유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짐작으로 언니와 싸워서 그랬을 거야, 또는 내가 뭘 또 쏟았겠지. 근데 엄마에게 파리채로 맞았던 상황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엄청 무섭다는 그 사실이 각인이 되었다.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왜 혼났는지 나의 잘못은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에게 맴매로 맞았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우리가 맴매를 드는 이유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함이었는데, 어쩌면 그게 아이에게 공포스러운 기억만 남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아이와 약속한 것처럼, 절대로 아이에게 맴매를 들진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를 바르게 키워가도록 다른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아이가 크면서 엄마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