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처럼 깨끗한 우리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세요.
올해까지 육아 햇수 7년. 아이 키우면서 내가 가장 잘한 점을 꼽으라면 아이들에게 미디어 노출을 제한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첫 아이를 낳고 신생아인 아이를 보면서, 정말 순수 무결점 결정체인 우리 아들에게 세상의 때를 최대한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 입에 들어가는건 무조건 좋은 유기농, 무항생제 식재료로 만들었고, 우리 아이 소중한 곳이 매일 닿는 기저귀가 일회용인 게 싫어서 천기저귀까지 썼었다. 심지어 한 때 떠들썩했던 안아키도 기웃거리던, 그런 엄마였다. (주변 친구들은 내가 애를 대충 대충 발로 키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유난을 떨어서 놀랐다고...) 그러기에 우리 아이의 순수한 뇌에 세상의 때가 그득한 영상을 보여주는 건, 도화지처럼 깨끗한 아이의 마음과 정신을 더럽힌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컸다. 그래서 정말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키우려고 애썼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부부도 아이가 다 자고 난 밤 중에만 티비를 볼 뿐, 평소에는 티비와 안녕했다. 주말에 늘어져 티비 보는 게 낙이었던 신랑의 저항이 컸지만, 미디어 쪽에 있어서는 내 의지가 워낙에 강했고 또 아이를 위한 일이었기에 남편도 타의적으로 티비와 멀어지게 되었다.
사실, 아이에게 영상, 미디어 노출을 자제하며 키운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에게 티비 한 번만 틀어주면, 스마트폰 한 번만 쥐어 주면 조여오는 육아의 우울증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고, 답답한 일상에서 넋 놓고 쉴 수 있다. 가열차게 엄마를 찾아 부르짖는 아이에게서 그 시간만큼은 해방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게' 라는 나의 신념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티비와 스마트폰이 없는 공간을 아이들은 자신만의 놀이와 책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생각을 멈추게 하는 영상들이 없이 심심한 시간이 워낙에 많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심심한 상태에 적응하며 혼자 노는 방법을 하나씩 깨우쳐 가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은 심심하게 만들면 창의적으로 자신만의 놀이를 만든다. 그래서 아이는 각종 블럭, 퍼즐, 레고들을 섭렵했고, 자동차와 공룡을 가지고 역할극을 하며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놀았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둘이서 몸으로 하는 싸움놀이와 공룡 피규어로 하는 공룡놀이를 주로 하며 신나게 논다. 그리고 첫째는 페이퍼 블레이드 책으로 종이접기하는 것에 흠뻑 빠져 있다. 그래도 심심하다고 말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에서 땀 빼며 신나게 놀고, 주변 공원 산책, 마트나 시장 등등 아이에게 실제의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리고 사실 제일 만족스러운 건, 책의 심심한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도 티비를 보다 책을 보면 자극이 훨씬 적어 지루하지 않은가, 아이들은 더할 것이다. 아이가 좋아할만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책에 많기에 우리 두 아이들은 책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아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 고민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무조건 티비와 스마트폰을 치우고 심심하게 만들면 절반은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엄마들이 제일 많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때는 아이를 데리고 외식을 해야할 때이거나 잠시 친구 만나러, 혹은 바람 쐬러 커피숍에 갈 때일 것이다. 아마 처음부터 아이에게 스마트폰 쥐어줘야지 생각한 엄마는 없을 거다. 엄마도 답답하고, 밖에 나가서 밥도 먹고 싶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나가면 아이는 조용하게 있지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거나 큰 소리를 낸다. 내가 밖에서까지 이렇게 눈치보며 밥 먹어야 하나! 이 시간만은 엄마도 즐기자 싶어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실, 나도 그 때가 가장 큰 유혹이 왔었다. 밖에서 약속있을 때,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이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돌아다니는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고, 아이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들이 내 잘못처럼 더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문제를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스마트폰에서 영상 하나만 틀어주기. 그거면 게임 끝이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건 정말 타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늘 가방 안에 자동차 장난감, 소리나는 펜, 사운드북, 핑거 푸드들을 잔뜩 싸 짊어지고 다녔다. 늘 아이와 외출할 때에는 가방에 장난감 한 가득 뒤로 메고 아이가 지루할 때마다 계속 꺼내 주었다. 한 번 아이 데리고 외식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내가 지치니 되도록이면 외식보다는 집에서 해결하거나, 놀이방 있는 식당들만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몇 년을 고생하니, 이제 7살,4살 된 두 아들은 외식을 하러 나가도 스마트폰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호기심 폭발하는 어렸을 때 한 2~3년? 그 정도만 버티면 됐었다. 힘들지만 결국에는 습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 길을 가다보면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거치대로 편안하게 앉아 손가락을 휙휙 하며 영상을 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미디어를 접하는 연령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엄마들이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가. 나도 키워봤으니 그 마음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미디어에게 우리 아이들의 시간을 내 주기 보다는 아이들만의 놀이가, 책이, 다른 놀잇감들이 아이와 함께 한다면 아이들이 더 반짝반짝할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요새 노키즈존이라는 둥, 맘충이라는 둥.. 고학력에 사회생활 이미 다 해 본 우리 엄마들이 육아에 지쳐 잠시 숨 돌릴 식당이나 까페같은 공간에서도 아이들 소리에 너무 매정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물론, 도가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우리 어릴 때처럼 밖에 나가 해 질 때까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맘 놓고 놀던 시절이 아니지 않나. 아이들이 맘편히 놀 놀이공간도 부족하고, 사실 집에서 아이랑 놀아주는 것도 엄마들에게는 너무 버겁다. 어쩜 내 말이 너무 꼰대스럽고 '쟤 뭐야~'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스마트폰과 티비를 어릴 때 보여줄수록 나쁜 건 너무나 잘 알지 않나. 미디어에 우리 아이들을 너무 무방비상태로 두지 않았으면 하는 오지랖을.. 조심스럽게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