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코로나 일지 2

함께 살아야 하는 시간

2020. 7. 13


1.

그들에게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언젠가는 소남이 마을 목수에게 자기 집에서 쓸 창틀을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소남의 이웃 사람도 그 목수에게 창틀을 주문했다.

소남과 이웃 사람은 똑같이 자신들의 집을 증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을 마친 목수는 완성된 창틀 모두를 이웃 사람 집에 갖다 주었다.

며칠 후 나는 소남과 함께 주문했던 창틀을 받으러 목수를 찾아갔는데 소남 몫의 창틀은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목수가 만들었던 창틀 모두가 이웃 사람에게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소남의 입장에서 보면 참 난처한 상황이었다.

창틀이 없이는 집 증축이 진행될 수 없었고 새로운 창틀이 만들어질 때까지 몇 주 정도가 더 허비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남은 화가 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남에게 그 이웃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소남은 개의치 않고 그냥 '그 사람이 저보다 창틀을 더 급하게 써야 했나 봐요.'하고 말할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실수했는데 해명을 요구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지만 소남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배려는 라다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오래된 미래, 110~111쪽-



2.

해질 무렵이면 늘 짹짹거렸던 동네 참새 녀석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

몸이 재빠른 염 바하둘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날 뿐 피리 부는 아저씨를 따라간 쥐들처럼 아이들이 사라졌다.

엄마가 먹을 점심밥을 챙겨 배달 가는 뿌자 루자 자매가 잠시 보였다가 이틀에 한 번 빌려간 책 한 두 권을 다시 되돌려 주러 오는 아렵 아려따 오누이와 서부가 잠시 나타났다가 할아버지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굳게 닫힌 대문을 살짝 열고 린을 만나러 오는 제이슨도 금세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늘 동네를 빨빨거리고 다녀 하루는 두 시간이나 찾아 헤매야 했던 앞집 쌈랏은 일찌감치 고모집으로 가 옴싹 달싹도 못한 채 그 고모집 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우리 집 린이도 몸이 근질거려 죽겠다는 듯 여러 가지 요가 자세(?)를 취해가며 텔레비전을 본다.



3.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거의 가려지는 작은 얼굴의 수실리아가 오늘은 웃지 않았다.

새벽 여섯 시 일어나자마자 비떼네 집에 가 설거지를 하고 다시 집으로 와 아이들과 남편의 밥을 짓고 다시 말라네 집으로 가 구석구석 청소를 하다가 오후 네시면 다시 집으로 와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다시 비떼 네로 가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저녁 일곱 시 반이면 집으로 돌아가던 길, 생글생글 웃으며 '카나 카누 버요? (밥 드셨어요?)"라고 묻던 수실리아였다.

고된 일상에도 결혼식에라도 가는 날이면 한껏 멋을 부릴 줄 아는 수실리아가 얼굴이 좀 달라 보였다.

"남편이 때렸어요 자고 있던 저를 새벽 세 시에 깨워서는..."

멀쩡히 페인트 칠 잘해주며 돈을 벌던 수실리아의 남편은 어느 날부터 일을 안 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자를 데려와 수실리아와 싸움이 일게도 했다.

그 싸움에 멱살이 잡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는데도 수실리아는 웃었다.

주스와 비스킷을 사 들고 수실리아를 찾아갔을 때, 수실리아는 그냥 웃기만 했다.


"떠빠이꼬 부다썽거 어브 떼띠꺼이 초르누써나." 남편이랑 그냥 헤어져.


나의 말에 수실리아는 어떻게 그러냐고 했다.


그런데 문득, 오래간만에 다시 <오래된 미래>를 밑줄 치며 읽는데 며칠 전 내가 수실리아에게 한 저 말이 자꾸 걸린다.


4.

아이들을 집 안에 두고 내보내지 못한 지 벌써 넉달 째가 되어간다.

뒷집 서바나는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이고 서바나 옆집 이반도 얼굴을 아예 못 봤다.

이반 집에 세 들어 사는 아수또스는 제 아빠랑 운동 가는 길에 몇 번 보았고 아수또스의 누나 아유스마도 아예 안 보인다.

린이랑 장난치며 학교 놀이를 하던 엉기따도 간 곳이 없고 곱슬머리가 예쁜 딜리샤 오누이도 보고 싶다.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해 나는 동네 서점에서 색칠 그림책을 몇 권 사 집으로 찾아가 하나씩 나눠 주었다.

도서관에 오면 색칠도 했던 아이들은 색칠 그림책을 무척 반가워했다.

다 칠하면 새 것을 갖다 줄 테니 도서관에서처럼 깨끗하게 찢지 말고 잘 칠해보라고 일러주었다.



5.

아빠가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되어 일주기를 치러야 하는 어린 아들 염 바하둘은 다시 머리를 깎았다.

뚜삐라고 머리 뒷 꼭대기에 몇 올만 남겨 놓고 머리를 모두 밀고 힌두식 제사인 뿌자를 준비한다.

새벽 세 시 억지로 일어나 팔 감자를 받으러 팅구네까지 삼십 분이나 걸어갈라치면 어슬렁거리는 개가 무섭다던 염 엄마는 아침 장사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또 오후가 되면 저녁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염의 엄마는 감자며 양파, 토마토를 팔아야 해 아침저녁으로 사거리로 나가니 염은 다른 집 아이들보다 자유롭다. 우리 집에 오기도 하고 린이랑 가끔 밖에서 공차기도 한다.

염은 린이보다 두 살이 많지만 몸은 더 작다. 그래서 린이가 입던 옷과 신발을 빨아 염에게 주기도 한다.

며칠 째 입고 놀던 옷을 그대로 입고 염이 또 놀러 왔다.

흙이 묻어 더러웠고 땀에 절어 꼬질꼬질했다.


"염! 옷 좀 갈아입고 와라. 너 옷도 많은데 왜 옷을 안 갈아입니?"


염은 잽싸게 집으로 돌아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해질 무렵, 염은 옷도 갈아 입고 목욕도 했다며 예의 그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문득, 오래간만에 다시 <오래된 미래>를 밑줄 치며 읽는데 며칠 전 내가 염에게 한 저 말이 자꾸 걸린다.



6.

올더스 헉슬리나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는 것 같은, 지성적인 여행을 하는 때에도 어떤 새로운 정보에 눈을 뜬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나 자신은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의 산물일 뿐이며 영속성을 위해 편향적인 교육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을 뿐이다.


-오래된 미래, 40쪽-



7.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배려, 공손한 사양, 셔크파 나무를 태우는 향기, 검약 이런 것들이 내 일상이 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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