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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Nov 09. 2023

프랑스 소도시에도 가을이 왔어요

프랑스 교환학생 일상

2023.11.7 (화) 비 오는 프랑스 릴에서


 프랑스는 한 학기가 두 분기로 나뉜다. 9월에 시작하여 10월 말까지가 한 분기, 그리고 10일간의 가을방학을 가진 후 다시 두 번째 분기가 시작된다. 나는 가을방학 동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여러 도시들을 얕고 다양하게 순회하고 왔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서늘한 비 맞으며 야경을 보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따스한 햇살로 몸을 덥혔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날, 떠나기 전에 비해 급격히 하강한 온도에 놀라 코트끈을 동여맸다.


 프랑스의 추위는 한국과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영하로 떨어지진 않지만 뼈가 시린 느낌이라고들 한다. 건조해서일까, 하고 어림짐작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 이유는 '온돌이 없어서'인 것 같다. 기숙사 방이 어두운 동굴 속 마냥 서늘하다. 바닥부터 뜨끈뜨끈하게 데워지지 않으니 창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여과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나는 전기장판을 깔아 둔 침대 속에서 이불만 꼭 껴안고 있다. 마치 겨울잠 자는 곰 같은 모습이다.


 프랑스 릴은 영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날씨가 비슷하다. 그건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내내 비구름으로 가득할 것이다. 올해 여름 맑고 따스한 햇살 받으며 바삭하게 태워 둔 살이 다시 허옇게 될 것 같아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히 비 오는 걸 좋아하는 덕에, 침대 속에 누워 창에 닿는 토독토독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말끔해지는 걸 느끼곤 한다.


 오늘은 수업이 한 개 있었다. 4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는 셰익스피어 희곡 수업이다. 수업이 늦으니 점심쯤 느긋하게 일어나 카레 우동을 만들기로 했다. 집 안에 굴러 다니는 감자를 처리해야 해서 감자를 듬뿍 넣은 카레 우동. 공용 주방에서 감자를 오래 삶다 보니 옆 방 사는 로라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로라와는 항상 공용 주방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양파를 썰거나 감자를 삶거나 한다. 스페인에서 온 로라가 파스타면을 삶으며 스페인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최고였다고 말한다. 로라가 종강하면 다시 한번 스페인에 놀러 오라며 나를 집으로 초대해 줬다. 나는 무조건 갈 거라며, 말 바꾸지 말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로라가 방으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여전히 감자를 삶고 있다.


 먹는 시간보다 만드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던 카레 우동을 깨끗이 해치우고, 전 날 완성하지 못하고 잠들었던 브런치 글을 마저 썼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럴 때면 내가 무슨 훌륭한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내 문장에 어떤 기대를 걸지 않으며 나는 무슨 작가님도 아니며 이 글을 과연 누가 읽기는 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저 나 자신을 위해 꾸준히 쓸 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써 온 일기의 문장들이 차츰차츰 성숙해지는 것을 목격하며 한 40대가 될 즈음에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다가도 너무나 잘난 글을 쓰는 또래 친구를 보며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어찌 됐든 유통기한 지난 글을 하나 발행해 냈다.


 그다음엔 노래를 들으며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들을 마저 보정했다. 내 사진의 비결은 색감을 빼고 찍는 것이다. 나는 색감을 완전히 빼서 촬영한 후 보정으로 색깔을 창조한다. 실제로 풍경을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달라서, 육안으로 볼 때와 같은 느낌을 직접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 기억 속 세비야는 오렌지 나무의 색깔로 남아있다. 따뜻하고 상큼한 주황색, 푸르고 생기 있는 초록색이다. 사진 속 어두운 부분에 주황색을 끼얹고 초록색의 채도를 강조한다. 내가 느낀 도시의 감성을 그대로 사진에 녹이는 방법이다.


 사진을 보정하며 노래를 듣다 보니 노래를 직접 부르고 싶어졌다. 유튜브에서 'I wish you love' 배경음악을 검색한다. 사람들이 업로드해 둔 배경음악에 내 목소리를 얹는다.


I wish you shelter from the storm

네가 폭풍우가 칠 때 쉴 곳이 있길 바라
A cozy fire to keep you warm

널 따뜻하게 해 줄 벽난로가 있는 곳
But most of all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When snowflakes fall

눈송이가 떨어질 때
I wish you love

네가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도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노래.


 대학생 및 자취생의 일상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같다.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는 주로 빨래와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밀린 과제를 처리하고, 넷플릭스를 조금 보다가, 내일은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며 잠에 든다. 약속 없는 날에는 보통 이런 식의 심심한 하루가 흘러간다.


 기숙사에서 보이는 커다란 나무의 잎들이 노란색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쪼그라든 게 보인다. 푸르고 영롱하던 잎들은 눈치 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떨어져 버릴 것이고, 금세 겨울이 올 것이다. 내일은 서점에 가서 프랑스 시인의 책을 사고, 카페에 가서 그 책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해야지. 유명한 시인이 아니어도 좋아. 또 다른 하루를 보내며, 프랑스 교환학생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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