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까지 프리랜서일까?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늘 받는 질문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규제가 완화되던 작년즈음,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이때 주변사람들의 결혼식이 미친 듯이 잡히기 시작했다. 진짜 나 빼고 다 결혼하냐..
20살 때부터 대학교를 다니면서 대외활동, 봉사활동도 많이 하면서 20대 초반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고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온 모임이 꽤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러 갔을 때 친한 사람보다는 오랜만에 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모임의 시작은 당연하듯 근황 토크였다. 어떤 회사 아직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고, 이직했으면 어디로 이직했는지 알려주고, 승진했으면 축하를 하기도 하고, 회사에 큰 소식이 있으면 공유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대부분 결혼을 하는 시점이 안정적인 직업이 생기고, 주변에도 비슷한 시기에 있는 사람이 많은 시점이다 보니 대화 내용의 거의 회사이야기였다.
스물여덟까지는 타격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오랫동안 크몽에서 PPT를 디자인해서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장해 오고 다양한 기업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로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크몽 행사에 초대받아 상도 받고, 인터뷰도 하면서 점점 디자인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 대학교 막학기 시절 인연을 맺어 나의 첫 스타트업이었던 탈잉에서는 온라인 디자인 강의를 촬영했고 강의 내용으로 책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친구'라고 불렸다. 그렇게 불렸던 이유는 아마 스물다섯부터 스물여덟까지의 나는 스스로의 포지션에 자부심감이 엄청났고 그 자신감이 행동이든 말으로든 티가 많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프리랜서야!!"에서 "나? 프리랜서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과 자신감은 정확히 스물아홉 후반부터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프리랜서는 시간이 곧 돈인데 돈을 버는 시간보다 돈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스물 중반부터 너무나도 빠르게 프리랜서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스물 후반부터는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시점부터 벌어둔 돈이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갔다. 시각디자인 대학원 수업 과제를 하기 위해 PPT의뢰는 대부분 거절했고 포트폴리오는 멈춰버렸다. 무엇보다 거의 5년을 집에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에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대학원 생활도 잘하고 있고, 틈틈이 외주도 하고 있는데 무언가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아.. 그냥 뭐 프리랜서야. 똑같아."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넘겼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이 분명 너무 멋있었는데, 30살의 프리랜서는 왜 이렇게 다른 길이 불안하게 느껴질까?
나는 솔로에 프리랜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평소 집에서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안 보는 연애프로그램이 없을 정도) 그중에서 극 현실주의적인 <나는 솔로>를 가장 좋아한다. 아무래도 30대의 출연자들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나온 프로그램 콘셉트인 만큼 자기소개시간에 직업, 가치관, 가족, 재산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후엔 각종 포털사이트, SNS에 출연진들의 정보가 정리되어 올라오는데 직업에 대한 얘기가 정말 많다. 심지어는 이들의 직업과 연차를 분석해 연봉을 예측하는 글들도 쏟아진다.
그나마 현실적인 연애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프리랜서가 한 명도 안 나올까? 직장이 있는데 시간이 자유로운 직장인이 아니라 '집에서 자유롭게 일하지만 수입은 일정하지 않은 프리랜서'에 대한 다른 출연진들이나 대중의 생각은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30살에도 프리랜서인 내가 앞으로도 쭉 프리랜서라면, 결혼할 때 상대방의 부모님, 가족들, 친구들에게 '프리랜서'로서 긍정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과연 일이 꾸준히 들어올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을 이해하고 잘 녹여낼 수 있을까?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회사에서는 프리랜서도 몇 년 차 경력자로 인정해 줄까? 연봉은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 시대가 온다>라는 책에서는 말 그대로 직장에 소속된 사람보다는 프리랜서가 훨씬 많아지는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꼰대 같은 상사도 일 못하는 동기도 없는,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일만 할 수 있게 프리랜서의 장점이다. 프리랜서라서 틈틈이 일을 하며 대학원도 다닐 수 있었다. 이 외에 장점도 너무 많고 앞으로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잘 해내고 싶지만 30살의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지 모르겠다.
나의 이런 고민을 내 주변사람들은 모른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 회사에 입사하거나 자영업을 할 때 누군가가 '갑자기 왜?'를 물어보면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그리고 프리랜서라서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움 뒤에 숨겨진 불안함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또, 브런치에서 프리랜서 선배들에게 여러 조언을 듣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글을 썼다.
절대 틀린 길은 아니지만 가끔 의심되는 이 길이 맞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