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부록
나는 원래 한순간도 소홀히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학교 때는 오후 수업을 몰아두고, 오전에는 중국어 학원을 다니며 하루를 일찍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미팅을 잡았다.
하루를 계획표로 꽉 채워야 마음이 놓였고,
그게 나의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광고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모든 게 흔들렸다.
야근이 일상이 되면서, 계획이라는 게 무의미해졌다.
한 번은 퇴근이 늦었지만 그래도 요가를 가보겠다고 했다가
“니 일이 끝났다고 니 일이 끝난 게 아니라
내 일이 끝나야 니 일이 끝난 거야”
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내 하루를 통제할 수 없구나.’
그 뒤로 나는 되는대로 사는 훈련을 했다.
일찍 끝나는 날엔 순대를 사서 레드와인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어느 날은 갑자기 친구를 불러 술 한잔을 했다.
계획 없이도 괜찮은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의 40대가 되어 다시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조퇴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외출이 불가능한 날도 많다.
나도 피곤하다 보니,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의 나에게는
되는대로 살기가 모토다.
어제보다 조금 더 유연하게,
내가 맞춰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
완벽한 하루는 없다.
다만, 그날그날 최선을 다한 흔적들이 모여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육아도, 일도, 나 자신도
되는대로 맞춰가며 살아가는 지금,
어쩌면 그게 진짜 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