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공간은 결국 우리를 만드는 일

불혹의 부록

by 뭉차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꾸준히 질문을 던진다.

‘나의 취향과, 지금 내가 지키고 싶은 행복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


독립하고 처음 가진 집에서는 모든 기준이 ‘나’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것처럼, “집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알아갔다.

작은 예쁜 잔 하나만 바꿔도 기분이 달라졌고, 집 안의 사소한 것들이 나를 대신해 말했다.

좁긴 했지만 그 집은 온전히 ‘나의 무대’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제는 나의 취향보다 가족이 편안할 것,

아이가 마음껏 울어도 괜찮고, 툭 넘어져도 덜 위험한 공간일 것,

하루 끝에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해졌다.


마야 안젤루는 “집은 우리가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문장이 너무 잘 이해된다.

우리 아이가, 우리 가족이, 아무 이유 없이 편안할 수 있는 공간.

그게 바로 집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다고 나를 완전히 지워버리진 않았다.

거실 한 켠에 작은 취향을 남겨두고, 좋아하는 향을 채워두며

하루를 단단히 버틴 ‘나’를 확인할 여지는 남긴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의 삶을 다시 만들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아마, 지금 그 과정을 집 안 곳곳에서 겪고 있는 중이다.


결국 집을 꾸리는 일은

나의 취향과 가족의 행복이 자연스럽게 섞일 지점을 찾는 일이라는 걸

조금 늦게야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다운 집’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결론은 단순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말처럼,

“사랑이 있는 곳이 곧 우리의 집이다.”


내 집은 지금,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조용히, 꾸준히, 우리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