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에 중계동 산 104번지에 살았다.
요새는 인터넷에 쳐보면 백사마을이라고도 한다.
중계동 산 104번지는 산을 깎아 만든 동네이다. 숲이 있어야 할 곳에 집이 있었다.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우리 집에서 건너편 쪽을 보면 멀리 사는 사람이 빨래 너는 모습이 보이고, 빨랫줄에 널은 빨래가 주렁주렁 보일 정도였다. 어느 집 하나 예쁜 집이 없었다. 연탄재가 쌓여있고 골목골목은 미로 같았다.
처음 이사 와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동네를 구경하고 아이들이 살고 있나 살펴보았다. 어느 마당에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려 마당을 기웃기웃하기도 했다.
아래쪽 경사로 내려가면 마을 입구에 유일하게 슈퍼가 하나 있었다. 산동네여도 교회도 있고 미용실도 있고 가끔 리어카 아저씨가 옷을 잔뜩 싣고 팔러 오기도 했다. 나는 사지도 않을 거면서 리어카에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새 옷을 사본적이 없으니 참으로 사고 싶었다.
어느 날 리어카 옷 구경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가 리어카에서 구경했던 빨간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사가지고 오셔서 나에게 툭 건네주셨다. 언제 아버지가 리어카에서 옷을 고르셨을까. 아버지가 이런 걸 사주 시다니 희한했다. 어색했다.
색이 좀 마음에 안 들어서 검은 봉지에 담긴 블라우스를 가지고 리어카 아저씨한테 뛰어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져 아저씨가 갔을까 봐 걱정되었다. 다행히 아저씨가 있었다. 나는 똑같은 디자인의 분홍색 체크 옷으로 바꾸었다.
내일부터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그 블라우스를 자주자주 입고 다녔다.
중계동 집은 허술하게 집을 짓다 보니 어느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린 날 학교 갔다 와보니 우리 집 부엌이 산사태에 무너져 있었다. 살면서 뭔가가 무너지는 경험을 실제로 하게 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흙더미에 부엌살림이 다 파묻히고 건질 것이 없었다. 조촐한 부엌살림이라도 우리에겐 소중한 물건이었다, 진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솜씨 좋은 아버지가 판자를 마련해서 먼젓번 보다 더 넓고 반듯하게 부엌을 고쳤다. 원래는 다 쓰러져가는 부엌이었는데 뭔가 더 넓고 문도 달리고 훨씬 나아졌다. 다행히었다.
가끔 꿈에 나오는 산동네. 내 꿈속에 나오는 산동네는 홍수가 나서 아랫동네 윗동네가 물에 잠겨있다. 꿈이지만 세상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세상이 멸망하는 느낌이 든다. 열악하고 비루한 산동네였지만 나에게는 내가 그 시절 살아갔던 터전이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 동네이다.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에 묶여서 평생을 사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특히 십 대 시절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은 것 같다. 지금은 더 많은 세월이 흘렀고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데도 그때의 기억이 또렷할 뿐 최근의 기억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