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다.
나는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았다.
나의 절친 J언니가 며칠 전 새벽에 죽었다. 돌아가셨다.
이 언니를 사귀며, 이 언니의 삶이 끝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을 내가 살아 있을 때 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언니와 놀고, 이야기 나누고, 밥을 먹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케미가 잘 맞았다. 그래서 사귄 것이다. 나이답지 않은 맑은 피부와 순수한 마음의 언니가 좋아서 자주 만났다. 이 언니는 내복 입고 만나도 편할 것 같고, 반말 존댓말 섞어가며 말해도 흉보지 않을 것 같았다.
참으로 무해 한 사람이었다. 누구를 흉보는 것도 할 줄 모르고 누구를 판단하지도 않는 언니가 좋았다.
언니는 나와 나이 차이가 열 살 정도 나고 육십이 넘었지만 전혀 어른인 척하지 않고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나이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캘리그래피를 같이 배웠다. 스무 명이 있는 교실에서 내가 유일하게 픽한 사람이었다. 언니를 픽한 이유는 그 '무해함'이 나도 모르게 느껴졌나 보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람의 사귐에 '무해함'은 중요하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심지어 자신을 공격해도 악 소리 한번 못 내고 싸울 줄도 모르는 사람. 아무리 가까운 사이 심지어 부모조차도 나를 공격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배신하고 협잡하고 이간질하는 사람들 틈에 무해함은 나에게 중요했다.
나는 J언니를 사귀며 내가 왜 언니를 사귀지? 몆 번이나 마음속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이유를 잘 몰랐다. 위의 쓴 이야기들도 지금 글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만큼 언니는 내가 종전에 사귀던 친구들과 달랐다.
내 기준에 무색무취의 사람인데 이상하게 언니하고 있으면 편했다.
그런 언니가 죽은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 시나리오에 없었던 일이다.
지난여름 언니는 말했다.
'나 한 달만 어디 갔다 올게.'
우리는 한참 죽이 잘 맞아 잘 만나고 있던 시기였다. 거의 며칠에 한 번씩 보다가 한 달 이상 어디 갔다 온다고 하니 이상했다. 허전했다. 이유도 잘 말해주지 않았다.
가을이 돼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늦가을쯤에 언니가 아파서 치료하느라고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니랑 놀아야 되는데...
어서 잘 치료하고 오라고 했다.
올해 봄쯤 언니를 다시 만났다. 백발의 멋들어진 커트 머리를 하고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캘리그래피를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예쁜 카페도 가고 저수지도 구경하고 미술관도 가고 밥도 먹었다.
언니가 잘 치료된 줄 알았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불과 한 달 전 언니는 병이 재발했다고 했다.
전이 됐다고 했다.
언니는 시골에 가서 살 생각을 했다. 종이에 연필로 시골 땅이 어떻게 생겼고, 언니 엄마 집은 어디고..그렇게 설명을 했었다. 아픈데.. . 자꾸 무엇을 해야한다고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했다.
그리고서는....
한 달 동안 전화 통화도 어렵고 그러더니 며칠 전 죽었다.
죽었단다.
건너 건너 소식을 들었다.
부고 문자는 일요일 날 받고, 월요일 발인이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올 듯하다가 멈춘다.
내가 이상하다. 사이코 패스가 됐나?
절친이 죽었으면 장례식장도 가고 울어야 되는데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거짓된 관계였나?
이상했다.
...
나는 공감 능력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 도리도 오지랖 넘게 잘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왜 그러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지? 나 왜 이러지?
글을 쓰며 알게 됐다. 나는 이제 겨우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다. 어둠의 동굴에서 이제 밝은 봄을 맞이했다.
겁났다. 분명 그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어둠과 손잡을게 보였다. 우울과 한동안 동행 할게 뻔했다.
그러면 나는 애들도 못 키우고 학교 공부도 못하고 글도 못쓴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어둠이 될 수 있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그래서 절친의 장례식도 가지 않는 못돼 쳐 먹은 년이 되기로 했다.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천국에서 언니 만나면 변명이라도 하려고 이렇게 글을 써 놓는다.
언니가 아직 살아있는 것만 같다.
사진 속 갤러리에 이쁘게 환하게 웃는 사진이 있는데...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언니는 너무너무 배려심이 많아서, 착해서,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지 못해서 아팠다.
나를 잘 이해하는 언니한테 한마디 한다.
'언니. 나는 좀 더 살게.. 이기적으로... 그리고 언니 장례식 못 갔어. 미안해'
평소의 언니라면 이해 해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