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볼일 이 있어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동네를 가 볼일이 생겼다. 학우 언니가 텃밭에서 기른 상추를 준다는데 그쪽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저번에도 상추를 주셔서 받았던 언니다.
마침 아들이 심심했는지 따라온다고 한다.
예전 동네로 접어드니 아들이 말한다.
"어. 익숙한 동네다."
아들은 예전 살던 집을 가보자고 한다. 마침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곳을 가 보았다. 아들은 빌라 주차장에 내려서는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주차장에 내린 아들의 뒷모습이 그때 보다 훌쩍 컸다. 아들은 빌라 이곳저곳을 사진을 찍는다.
아들의 기억 속 첫 집이다. 도로에서 우리가 살던 2층 빌라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그곳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기억이 아득하다.
나는 이곳에 살 때 이상하게 악몽을 많이 꿨었다. 2층이라 그런지 누가 우리 집에 기어 올라올까 봐 불안했다. 밤에도 항상 주방 쪽 불을 켜 놓고 잤다. 그렇게라도 해야 덜 불안하게 잘 수 있었다. 거실 밖 풍경은 다른 건물 담벼락과 쓰레기장이 오른쪽에 있었다.
그곳에 살 때 자주 옆 동 빌라에서 고래고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방차도 자주 왔다 갔다 해서 잠을 설치기도 많이 했다. 여름에 창문을 열면 앞마당 쓰레기 더미 먼지가 올라왔었다.
여섯 명이 살 때라서 딱히 내 공간도 없던 곳이다. 사춘기애들 두 명한테 방을 주고, 셋째 넷째랑 나랑 안방에서 지냈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잤다. 그렇게 소파에서 자던 잠버릇으로 이제 남편은 방에서 잠을 못 잔다. 화장실도 한 개라 아침 등교 시간에는 난리가 났었다. 화장실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두드리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등교 전쟁'이었다.
이집에서 애들 학교 보내고 좁은 싱크대에서 가족들 먹일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도 싸고 참 열심히 살았다.
한참을 건물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골목길을 내려왔다. 아들이 한마디 한다.
" **슈퍼도 그대로 있네. 어. 그런데 이곳은 슬픈 곳이야. 여기 삼거리에서 엄마랑 자동차랑 부딪혔었잖아. 그때 슬펐어." 한다
또 다른 길을 가리킨다.
"여기는 내가 자전거 타고 가다 부딪혔던 곳이네."
일곱 살 때 자전거를 타다가 차와 부딪힐 뻔했는데 자전거를 패대기치고 피해서, 아들은 하나도 안 다쳤다. 자전거만 망가졌었다.
또 다른 장소를 가리키며 말한다.
"비 오는 날, 바닥에 물이 많은데 자전거 타고 세게 달리다 넘어졌어."
아들은 그곳에 살 때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골목골목이 자전거를 타기 위험한 곳이었다.
"엄마. 그런데 우리 집 주차장이 그때는 넓어 보였는데 지금은 좁아 보여." 한다.
나는 '그새 네가 많이 큰 거야.' 생각한다
아들은 내친김에 이사오기 전 예전 교회도 가보자고 한다. 한 시간만 놀다 오잔다. 아마 그 장소 그대로 예전교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이미 다른 교회로 바뀌었다고 하는데도,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아들이다. 나는 너무 피곤해 다음을 기약했다.
"예전 살던 곳 보니까 어때?"
나는 아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응. 좋았어."
옛날 살던 곳을 밟으며 추억을 생각할 줄 아는 아들이 되었다. 그때보다 키도 많이 컸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아팠던 곳이든지 즐거웠던 곳이든지 아들은 '그리움'을 경험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