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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가 무섭다. 그런데 세월은 고맙다.

by 필력

나의 고통 방정식 이야기이다.


내가 고통이 많이 없던 시절을 꼽으라면 이십 대 같다. 내가 벌어서 내가 살아가는 그 시절이 그나마 두 다리 뻗고 자던 시절이었다. 돈 없고 직업이 불규칙했어도 그랬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라는 큰 고난의 파도가 있었다. 결혼하고는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쓰나미를 맞이했다.


남편의 가출, 아이들의 방황 등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노력으로 되지 않는 상황에 절망하고 절망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고통을 자주 겪으니 말이다. 내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더 무섭고 두렵다.


마치 이런 것이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는 모르면서 겪었던 출산의 고통이고, 둘째 아이를 낳을 때는 알던 고통이지만 고통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운 것과 같은 것이다.


출산의 고통과 삶의 고통은 비슷하다.


늘 주야장천 아픈 것이 아니라. 시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 있다.


고통의 무게로 숨을 못 쉴 때 나는 인생을 하루 단위로 산다. 어쩌면 시간 단위로 살기도 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고통에 신음할 때 그렇게 산다.


고통이 장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살 수가 없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고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가 무섭다. 오늘 잘 지내야지 그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무언가에 특히 몰두하고 보낸다. 좋은 일, 웃을 일, 집안일, 봉사, 음악 듣기, 글쓰기, 개그프로보기등 그렇게 저렇게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두렵다.


그런데 하루는 어떻게든 금방 지나있다.


그러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건너오더라.


그 고통의 파도를...


세월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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