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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을 비극적으로 살았다.

나는 이제 인생을 시트콤으로 살 거다.

by 필력

참 이게 말이다.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쉬울 수도 있다.


내가 인생을 비극적으로 살아간 데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불행했었다. 엄마는 매일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고, 오빠들도 매일 맞았고 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맞았다. 웃을 일이 없는 집이었다. 여기다 말로 다 적지 못하고 표현 하지 못할 비극이 있었다. 집은 나에게 안식처가 아니라 지옥이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배운 거라고는 '화가 나면 때린다.'는 공식이다. 수학 공식처럼 인이 박힌 공식.


아. 그리고 하나 배운 거. 김치 담그는 것, 된장찌개 김치찌개 끓이는 것은 배웠네. 이것 외에 가족이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 보고 배운 게 없다. 정말 없다.


그러니 나는 인생이 비극이었다. 내가 꾸린 가정에 남편과 아이들이 조금만 갈등이 생기고,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의 뇌의 회로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어떨 땐 이게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힘든 일이 일어났으니 나는 힘든 게 마땅했고 정당했다.


이 불행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과하게 몰두하고 내가 가진 아이큐를 이용하여 상황을 해결하려 애를 썼다. 나의 힘듦을 잠재우려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환경을 바꾸는 방법, 내가 과하게 희생하는 방법, 갖가지 방법을 갖다 썼다.


그런데 말이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을 발견했다.


아직 비극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과하게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닥칠 비극이 무서워 미리 벌벌 떨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살만 한데 말이다.


나는 지인들과 맛있는 것도 사 먹을 수 있고, 고양이도 쓰다듬고, 남편도 나한테 잘해주는데 불행해서 못 산다는 것이다.


불행을 가불 해서 지금부터 미리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 미리부터 비극적으로 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불행이 지금은 불행의 씨앗만 보여도 벌벌 떨며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다.'


설사 비극적 일이 일어난다 해도 오늘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온몸으로 막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이다. 오늘부터 말이다. 이럴 바에는 말이다.


불행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인생을 비극적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미리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그리지 않기로 했다.


이왕이면 나답게 유머와 시트콤을 찾아서 살아갈 거다.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슬픈 마음이 들 때마다 웃기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마치 시트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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