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프로 취미러, 하지만 제로 세팅 중 - 두 번째
폭풍 가운데 서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래 폭풍 사이에서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러나 그게 앞인지 뒤인지, 아니면 옆으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꿈이었는데도 잠에서 깨니, 괜히 입 안에서 모래가 씹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이 스스로 방향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아니,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나아감에서 그 '앞'의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전거를 배우겠노라 다짐했던 그 해,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인생에서도 줄곧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가는 것인가, 전진해야만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잡다한 생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하필 그 해에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마비가 되어버려 세상의 시계가 잠시 멈추었고, 때문에 나 역시 진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래 미뤄둔 또 다른 나의 숙제,
'자전거' 앞에 서게 되었다.
자전거, 어디까지 타봤니?
자전거는 두 바퀴만을 이용하여 이동한다. 이동 수단 중 바퀴 수도 적다. 적은 바퀴수를 가지고 인간의 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이 보조 없는 순수한 페달링만으로 최고 속도를 낸 것은 2002년에 사무엘 휘팅햄(캐나다 선수)이 기록한 약 130km/h라고 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능한 속도가 아니다. 필자가 자전거를 배운 이후 가장 길게 갔던 것이 총 20km였는데, 평균 속도가 12.7km/h밖에 되지 않으니, 함께 로드에 있었다면 지나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뭐가 됐던 자전거는 매력적이다.
두 발을 지탱해 주는 두 바퀴 덕분에 원하는 곳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날이 좋아 조금 멀리 타고 가면 강의 바람도 맞을 수 있고, 푸르른 자연도 마주할 수 있다. 자전거 도로 위에 흩뿌려지듯 날아다니는 벌레들과의 사투가 끝나는 늦여름부터 자전거 도로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 도로 위엔 가지각색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란한 가족들이 느릿느릿 산책하듯 바퀴를 굴리기도 하고, 대회에 나온 사람들 마냥 엄청난 속도로 추월을 해가며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각기 저마다의 속도로 달려가는데, 중간 목적지는 비슷하다. 자전거 도로와 연결된 카페.
카페에 도착하면 자전거들이 즐비해있고, 몇몇은 라면을 먹으며, 또 다른 이들은 차가운 음료로 뜨거운 땀을 식힌다. 잠시의 휴식을 허락해 준 카페 안에서, 조심히 그들을 둘러보다 문득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당신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자전거란 이동 수단이다. 이동이라 함은 내가 있는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가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수단 중 하나가 자전거이다. 근데 그 물리적 변화에는 방향성이 존재한다.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직선거리를 보통 변위라고 말하는데, 그 변위는 위치의 변화량이기 때문에 앞, 위, 오른쪽으로 방향이 이동하면 양(+)의 값을 갖게 되고, 반대의 경우 음(-)의 값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양의 값을 가진 변화량을 반드시 긍정으로만 봐야 하냐?라고 묻는다면 그럴 수 없다. 그 이동이란 것은 늘 관찰자의 기준이기 때문에 A와 B가 다른 위치에서 본다면 누군가에겐 그 방향이 양이고, 다른 이에겐 그 방향이 음이 되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그저 '나아간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겐 야망이 있었다. 그리하여 삶을 어떻게든 전진해나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앞으로 나가는데 나만 뒤로 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갇혀 지내던 1년 반의 시간 동안 자전거를 배우며 알게 된 것은 인생의 방향은 양도 음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아가는 것도 꼭 앞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만 해도 된다는 것.
위치의 변화만 있어도 충분히 우리, 그리고 내가 정의 내린 그 '전진'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자전거 위에 올라타 수영장을 향해 달려가본다.
전진이 전진으로서의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목적지만 있으면 된다.
'앞'으로의 나아감은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를 향해서 내 위치만 변화시키면 된다.
때론 그게 하지 않았던 취미를 해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평소와 다른 길을 가보는 것일 수도 있고,
누워 있는 그 자리를 박차고 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나를 이동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