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맥질, 그리고 마지막 10m

나는야 프로 취미러, 하지만 제로 세팅 중 - 첫번째

by 문하현

이직을 했다. 5년간 한 일터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으레 있는 매너리즘과 번아웃이 찾아왔다.

마음의 방황을 몇 개월 거치고, 여러 고민 끝에 이직을 선택했다. 근데 이직이 매너리즘과 번아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처음 몇 주는 새로운 업무에 빠져 정신없이 배우고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익숙함이 찾아오자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루틴, 유사한 업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런 일을 하는구나..'



연구에 따르면 반복된 업무는 자율성을 떨어지게 만들어 번아웃을 유발한다고 한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JD-R모델(Job Demands-Resources Model, JD-R Model)이다. 반복된 업무의 정의를 완벽하게 내릴 순 없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어떤 '반복'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고 나면 심연에 빠진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설계된 걸 지도 모른다.



그때에 나는 이런 심연으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기 위한 취미 활동에 눈이 돌아갔다.

그중 하나가 수영이었다. 그런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던 수영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뛰어넘어야 했는데, 첫 번째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001.png 미리캔버스로 제작



어릴 적 엄마와 함께 갔던 대중목욕탕에서 발을 헛디뎠다. 얕은 물에서도 사람이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이후 몇 번의 실수와 친구들의 장난으로 물에 빠질 뻔했던 경험이 쌓이자, 물속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럼에도 처음 수영장을 등록했던 이유는 미뤄둔 숙제를 이제는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렇게 나 스스로를 건져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처음 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초급반에서 발차기를 배운 날, 어쩌면 수영을 영원히 배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빠졌다. 많은 인원들이 한 번에 같이 수영을 배우기 때문에 물이 무서운 나 같은 사람들은 입문이 쉽지 않았다. 하루는 선생님을 원망했고, 다음날은 포기할까를 수십번 고민했다. 단체 수업을 포기한 후 고민의 몇 주를 보낸 끝에, 소규모 그룹 레슨을 해주는 수영장을 찾을 수 있었다.





초보도 수영대회도 나간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수업 첫날. 선생님은 물이 무서워서 뜨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 물속 깊이 들어가는 연습을 먼저 시켰다. 한창을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 간혹 물 속에 무언가를 떨구고 주워오는 연습도 했는데, 실로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 속에 있는 내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때쯤 선생님은 나에게 동호회 가입을 권유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더 재밌을 거라했고, 정말 그랬다. 재밌고 유쾌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수영을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수영과 친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수영장 25m를 한 번에 자유형으로 가지 못할 정도의 초급 수준인 내가 어느덧 25m도 왕복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쓰는 운동도 일정 시간이 쌓이면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시간이 쌓아준 실력이었다. 그렇게 평영도 완주가 가능할 어느 무렵, 수영대회에 출전했다.



혹 이런 초보도 수영대회를 나가는구나 싶겠지만, 초급 중급 상관없이 도전을 독려해 준 회원들의 도움도 있었고, 나의 수영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큰 고민 없이 도전했던 것 같다.



IMG_1383.HEIC 수영대회가 열렸던 수영장 모습 / 출처: 나



수영대회 날, 나는 처음으로 50m를 완영했다.

한 번도 그 끝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레인 끝에 손 터치를 했다.



수영을 할 때-모든 유산소 운동이 유사하겠지만-가용 가능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나면 갑작스럽게 에너지가 방전된다. 그리고 50m를 기준으로 한계가 오는 지점이 40m 언저리다. 남은 10m가 지금까지 온 40m 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팔은 더 이상 휘저어지지 않는다. 발차기도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퍼져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그 10m를 넘어서야만 종착지에 도착한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어땠지?


석사 3학기 시절부터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투입된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며 살았다. 석사를 4학기만에 마무리하며, 졸업 논문을 던지고 나온 그 주에 바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멈춤 없이 일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반복된 번아웃과 매너리즘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 한계에 다다른 10m를 퍼져버린 몸으로라도 꾸역꾸역 넘어서봤냐? 자문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늘 종착지에 빨리 닿고 싶었다. 언제까지 해야할까, 이 삶은 언제까지 반복되는가, 지겹고 무료했다.

회사에 다녀와 침대에 엎드려 펑펑 운 날도 수두룩했다. 내 앞에 놓여진 인생의 도로에서 나는 도대체 얼마까지 와있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10m만 해보기로


대회날 깨달은 것은 수영이란 게 인생을 닮았다는 것이다. 인생처럼 물 속에 있는 나는 앞으로 몇 미터가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수영장 바닥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길이의 감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사실 크게 와닿진 않았다.


빠져 죽지 않으려면, 다 모르겠고 가다보면 래인 끝에 닿을거라는 생각과 앞에 10m밖에 남지 않았다! 속으로 외치며 두눈을 질끈 감고 팔을 휘저어야 한다는 것 뿐.



개인의 공식기록은 없고 여자계영만 완영을 마친 왕초보 대회 출전자지만,

그 어설프고 수줍은 허우적거림을 경기 내내 미소와 함성으로 응원해주던 사람들.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래인 끝 마지막에 닿을 때까지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은 그 경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하여 난 그저, 내 앞에 놓인 10m까지 해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번아웃을 유발하곤 했던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는 서랍에 넣어두기로.



나에겐 이제 얼마가 남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앞에 10m만 보는 것이다.


단, 10m.






[1] 자맥질 : 물속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놀려 떴다 잠겼다 하는 일, 수영의 순 우리말이라고도 한다.

[2] 개인기록이 없는 이유는 DQ를 당했다....이유는 말하지 않기로, 창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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