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바람

나는야 프로 취미러, 하지만 제로 세팅 중 - 세 번째

by 문하현

오랜 친구에게서 바질을 선물 받았었다.

바질은 생각보다 키우기 까다로운데 과습으로 잘 죽고, 적당한 바람(강하면 안된다)과 햇빛(너무 뜨거우면 안된다)이 필요한 친구다. 바질을 선물 받았던 때에는 작은 원룸 오피스텔에 살던 때라 통풍이 쉽게 되지 않는 구조 때문에 인위적인 불빛과 바람을 종종 쐬여주곤 했다. 그런데 이미 한뼘 넘게 자랐던 바질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별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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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시작으로 식집사가 되었다. 초보식집사.

사실 많은 식물들이 내 손을 거치며 마대에 버려졌다. 꽤나 슬펐다. 흙과 시들어버린 식물친구들을 버리면서, 애도의 뜻을 담아 눈물 한 방울도 함께 마대에 담아 버렸다.



몇 번의 화분 속 식물들이 바뀌어갈 때쯤 지금까지 키우고 있는 금전수가 집에 찾아왔다. 금전수는 바질보다는 키우기가 쉽다. 하지만 바질처럼 과습에 약하고, 적절한 빛을 쐬주지 않으면 도통 자라지 않는다. 보통 웃자란다고 하는데 금전수 특유의 모양도 상실한다. 금전수는-품종마다 다르겠지만- 감자처럼 생긴 비대근이 있는데 수분과 양분을 저장한다. 덕분에 물을 자주 주지 않는게 오히려 성장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바질과 똑같이 바람에 약하다.


아니다, 그냥 모든 식물들에게 바람은 중요하다.





흙과 바람


이후에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화분을 몇 개 더 들여놓았다.

유칼립투스와 올리브나무였다.



새로 이사한 집은 다행히 거실 문과 옷방 문이 비스듬하게 마주하고 있어, 양 쪽 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집 안을 휘젓고 지나갔다. 덕분에 따스한 봄 동안 문을 열며 지냈었다. 그러다 창문을 열자마자 들이치는 바람에 깜짝 놀란 어느 날이었다. 거친 바람에 놀라 몸을 주춤거리다 불현듯 돌아보니,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줄기가 꺾일 것처럼 휘어지는 유칼립투스와 마주했다. 너무 놀라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 나니 걱정이 밀려왔다. 흙과 양분을 다 먹은 유칼립투스에게 새로운 흙을 선물한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던 터라, 혹 뿌리까지 뽑힐까 싶었다. 유칼립투스의 입을 쓰다듬으며 잘 버텨다오.. 하루 이틀 그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봤더랬다. 그러다 잠시 바쁜 시간을 보낸 몇 주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유칼립투스에게 오랜만에 물을 주려다 깜짝 놀랐다. 유칼립투스 줄기에서 뾰족!하고, 새 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01 (1).png 미리캔버스 AI 도구로 만든 식물


WIND



바람, 영어로 wind.

Wind는 PIE(인도유럽어족의 공통 조상 언어) 어근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진다. 어근의 뜻은 to blow, to breath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숨과 호흡이라는 어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래, 바람은 스쳐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 그 이상이다. 식물에겐 생명과 성장을 준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도 많은 바람들이 불었었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겪은 10대의 폭풍,

유학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21살의 돌풍,

남들보다 늦게 대학교에 입학하고, 석사를 준비했던 27살 언저리의 회오리바람까지.



태풍처럼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꺾일 것 같이 휘어졌던 내 모든 순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내 삶을 더 단단하게 해주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모든 것이 인생에 필요했던 바람이었다.

그것은 나를 성장시켰고, 내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화분 앞에 앉아, 유칼립투스에게 물었다.

너에게도 필요한 바람이였을까?

답을 하듯 열심히 잎이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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