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천사이고
어느 쪽이 악마인지

가급적이었으면 악마가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

by 최문한

인력이라는 죄로

현장이라는 감옥에 갇혀

잡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작업보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노가다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재밌자고 올라온 글의 본문에는 학생, 학교, 교실, 출석부, 교복, 공부로 대체된다.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자연스레 갇혀버린 감옥에 있었고 나는 선택형에 있어 감옥의 문을 직접 열고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개미인력에는 나랑 동갑내기인 친구들이 나 포함 3명이 있다. 거의 호형호제하는 40대 형님이 하나 계시고 동네 형 같은 30대의 절반을 살아 넘긴 작은 형까지 해서 우리는 날마다 술자리를 갖거나 저녁을 같이 먹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언제 노가다 졸업하냐?'라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고 가기 시작한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노가다 졸업을 기다리고 있으며,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형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고 있으며, 40대 우리의 큰 형님은 현장을 뛰는 인부가 아닌 인부를 다스리는 사무실을 차리기 위해 버티고 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에 '졸업'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왠지 기나긴 전쟁 속에 지쳐가는 전투병들의 목소리를 담은 듯 처참하고도 처참했다. 술을 한두 잔 기울이며 노가다 얘기에 웃고 떠드는 이들의 얼굴 속에는 묘한 슬픔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졸업'이라는 단어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시절에나 들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노가다판에서 뿐만 아니라 주식인 코인판에서도 '졸업'이라는 단어가 들려온다. 노가다꾼들은 로또나 토토와 같은 하나의 대박만을 기다리며 주식 또는 코인도 마찬가지로 단 한방만을 노리며 인생의 졸업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 하루하루 컴퓨터 핸드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도대체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졸업은 뭘까? 그저 돈 많이 벌어서 돈을 펑펑 쓰는 게 졸업인 걸까? 졸업을 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일을 탈출하고 더 나은 일을 하는 게 졸업인 걸까.


정확히 그들에게 졸업이란 과연 돈만 많이 벌어들이면 끝이 나는 걸까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내게 당장 10억이라는 돈만 쥐어줘도 '아 인생 졸업이다!'하고 놀러 다니며 떵떵 거리며 살 것 같긴 한데 한 편으로는 10억이라는 돈이 내게 주어지면 '아 이거 더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겨날 것 같다. 마치 천사와 악마가 내 양쪽 귀에 날아다니면서 "너 이제 졸업이야 실컷 놀아!" , "무슨 소리야 이걸로 돈을 더 벌어야지!" 속삭이며 유혹하고 절제해 주는 것 같다. 근데 어디가 천사고 어디가 악마지?


주어지지도 않을 10억을 생각하니 마치 성공한 자산가가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가 껌벅이는 모니터 커서를 보니 헛된 망상이나 하는 것 같아 괜히 기분만 더 상했다. '아 나도 졸업하고 싶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졸업을 하고 싶었다. 졸업만 하면 끝날 것 같았던 학생일 때를 떠올리자니 막상 졸업이라는 게 좋지많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급 허무해졌다.


내 주변에는 꽤나 커다란 건물을 소유하신 건물주가 계시고 수십억을 벌어드리는 배추밭을 소유하신 농부가 계신다. 그들은 늘 취미로 아침에 주식 단타를 하고 쏠쏠한 수익을 걷어드린다고 별 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하며 '주식은 여윳돈으로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살아생전 죽어라 일해서 졸업을 하고 졸업을 한 후에 취미 생활로 돈까지 벌어들인다. 만약 졸업이라면 이런 게 졸업이지 않을까 걱정 없이 살아가는데도 걱정하지 않게 해 줄 정도의 수입을 계속해서 벌어들인다.


'아 시발 나도 졸업하고 싶다.' '졸업이라는 건 좋은 거구나...' 좋지많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허무했던 감정은 다시나마 정신을 바로 차렸다. '무조건 졸업해야 돼 졸업한 뒤에 일은 졸업한 나에게 맡기자'


좋지많은 않을 것 같다가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 놈의 졸업은 일단 해보고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의 말을 들을지 악마의 말을 들을지 생각이라도 해보게. 그런데 여전히 어느 쪽이 천사고 어느 쪽이 악마인지를 잘 모르겠다. 가급적이면 둘 중에 내게 도움 되는 쪽이 악마였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추천하는 쪽이 천사일 테니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