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노가다 저녁에는 칼잡이
늦은 밤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의 내용에는 다음 날에 대한 내가 일할 장소와 시간대가 기입되어 있었고 마지막 문구에는 '최선을 다해주세요'. 안 그래도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매우 매우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습니다 소장님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겁쟁이인 나는 참기로 했다. 며칠 동안을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데마찌를 겪고 수입도 없는 출퇴근을 경험하다 보니 '내가 기필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할 욕망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등가교환의 법칙은 내 욕망을 불태우기에 적절한 땔감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출력받은 현장은 무지막지하게 욕하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섭고 소음이 심한 기계들이 존재하지 않는 따스한 햇볕아래 새들이 짹짹 울려대는 평화로운 한 공간에 위치한 폐건물이었다. 예전에는 법원으로 썼던 모양이다. 건물 최상층에 '법 원'이라는 글자가 대문짝 하게 있는 거 보니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생긴 건 더 이상 쓸 가치가 없어진 건물처럼 보였지만 생각보다 대단한 건물이었다. 영화촬영 또는 넷플릭스나 티빙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드라마 촬영에 법원이나 검찰로 쓰일 장소 소재가 필요할 때면 늘 이곳에서 촬영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그 당시 제일 유명하고 인기가 폭발하는 배우들이 촬영을 위해 자주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젠장 엄청난 건물이었다. 하긴 태어날 때부터 법원을 품었는데 유명인들은 우스울 일이겠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다른 아저씨 한 분이 이미 담배를 여유로이 태우고 있었고 우리는 공통됨을 알 수 있었다. '혹시 개미인력?' 동시에 말을 뱉었고 동시에 대답했다. '아, 네 / 예' 아무래도 연장자인 아저씨와 둘이서 일을 그것도 난생처음 아니 두 번째구나 무엇보다 둘이서만 같이 노다가를 한다는 건 나에게는 매우 어색하고 적적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그 분위기는 거짓말 안 하고 30분 만에 깨졌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우리의 작업은 다음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오는 가구들을 건물 안에 위치한 곳곳의 방 안에 집어넣고 세팅하는 일이었고 덤으로 집어넣기 전에 이미 촬영을 마친 가구들을 서울로 돌려보내기 위해 차에 실어 넣는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와 존나 무겁다' 내 키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장롱을 둘이서, 내 몸뚱이만 한 책상을 혼자서, 100가지는 되어 보이는 바구니들을 둘이서 차에 실어 넣기 시작했고 2시간을 쉬지 않고 나르고 실고 나르고 실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촬영이 끝난 가구들을 서울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됐다. 몸도 몸이지만 자꾸만 들려오는 '살살' '살살해주세요' '살살 내려놔요' '살살!!' 살살 주문은 내 마음을 살살 괴롭히는 것 같았다. 가구는 살살 다치지 않게 다뤄야 하고 내 몸은 강하게 세게 존나 세게! 괴롭혀도 되는 몸뚱아리였다. 이거 완전 가구'님'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아무튼 가구님을 서울로 돌려보낸 지 30분 뒤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와주신 가구님들을 맞이했다. 5톤짜리 윙바디 대장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고 뒤에는 쫄따구 1톤 따리 용달차 3대가 연달아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같이 죽는다.' 마치 법원에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북한군 같이 느껴졌지만 나와 아저씨는 맞서 싸워 이길 자신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구들은 매섭게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쉴 틈 없이 가구와 가구와 가구들을 옮기고 내리고 올리고 집어넣고를 무수히 반복 또 또 반복했다. '살살이요!, 살살해주세요!' 가구가 아니라 가구님들을 조심히 달래주면서 반복했다.
마치 구슬보다 큰 닭똥 같은 땀방울을 한 바가지는 쏟고 나서야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흘린 땀방울만큼의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그제야 우리는 가구님들 무릎에 걸터앉아 대화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에 쉬지 않고 질문과 대답을 오고 갔다. 대화 속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화를 하나 꼽아보자면 내게 '참치 좋아해?'라는 한 마디였다. 회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인 스타일인지라 참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입맛인 나는 엄청 좋아한다는 비싸서 못 먹는다는 거짓말을 쳤다. 처음 제대로 오고 가는 대화를 쉽게 끊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아무래도 서로 고생한 뒤에 나누는 대화는 고생을 정과 신뢰를 만드는 거름이 되어주는 듯했다.
참치 얘기에 들뜬 듯 묵묵했던 아저씨의 톤은 자연스레 높아져 갔다. 언젠가 참치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아저씨의 꿈과 아침에는 노가다를 뛰고 저녁에는 참치집에서 참치를 썰어주는 아저씨의 노력은 목소리 톤에서 강하게 묻어 나오는 듯했다. 먹고살기 위해 살기 위해 먹었던 아저씨의 점심은 흘린 땀방울에 비해 맛있게 느껴졌을까. 아마 퇴근 후에 썰어야 할 참치를 생각하면 맛보다는 밀어 넣는 데에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괜히 맛있다며 아저씨에게 맛있지 않냐며 부추긴 내가 조금은 민망해졌다. 간절함이라는 건 이런 아저씨한테나 어울리는 단어였나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나 흘러 우리는 모든 가구들을 세팅까지 해주고 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퇴근하는 길에도 아저씨는 참치집에 한 번 놀러 오라는 제안을 하였고 나는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 이후 아저씨를 노가다 판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마주치지 못한 건지 참치를 썰러 가신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참치집에서 일을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디 참치집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많은 돈을 벌어 참치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됐을 때가 왔으면 좋겠다. 참치 맛에 빠져 참치집 투어를 다니다 근사하게 칼을 들고 서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저씨의 가장 높았던 음의 목소리로 뱉는 인사와 동시에 서로 '어?'하고 놀라 사장님이 된 아저씨의 손에 반갑다며 악수 한 번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