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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Oct 18. 2021

도둑

NEW YORK CITY, 2018



너와, 나

우리는 어쩌다 이 완만한 변곡에 서 있다


내달려 이탈하고픈 생의 곡선들, 우리는 그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생을 공유한다.


외로움과 치욕의 밤을 견뎌야 하는 누군가를 잊기 위하여

나는 너의 헤픈 웃음을 훔친다.


훔친 웃음을 내 얼굴에 붙이고 가까스로 짓는 미소에도

까무룩 시름이 잊힌다.


생의 곳곳에 은둔한 예기로운 것들을 피하려

나는 애써 굶주린다.


주려 움추러든 몸으로 그 날카로움이 피해 진다면

나는 곡기라도 끊으리.


삶의 날카로움이 말라붙은 나를 찾지 못하도록

배를 골린다.


팔을 뻗기도 전에 이미 가까워 맞닿은 피부의 온도를

아끼지도 않고 내어 주는 이가 있어서 겨우 견디는 시간


바싹 마른 몸으로도 피할 도리가 없는 것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나는 그 가까운 살 위로 더 밭게 들러 붙는다


내 등뒤로 바짝 달려드는 숨 소리

그 숨의 습기, 그 숨의 온도 그 기척으로 부터의 안도


나는 낫는다,

병으로 부터.


먼것은 거짓이다

먼것은 환상이다


그 먼 병과 눈물과 한숨은 다 허구이다

내 몸에 닿은 살과 숨소리 만이 진짜다.


우리는 아픈곳도 없이 앓이를 했다.


우리는 가시 없는 농담과 헤픈 웃음과 귀에 들리는 숨소리로

병을 이긴다.


젋음의 애닯은 병을.


너의 웃음을 훔쳐 나는 겨우 오늘을 산다

도둑이 되어서라도 나는 헤프게 웃고 싶어서


훔쳐 지은 미소에 되려 너도 낫는다

우리는 이렇게 이긴다


서로 빼앗긴 웃음을 가지고

겨우 낫는다.


이 완만한 변곡에 갑자기 우리가 있다.


어디로 갈까,

서로에게 도둑이 되어 빚을 지었으니


다시 언덕을 오르지 말자고,

내리막을 고꾸라지듯 구르지 말자고


우리는 서로에게서 훔친 웃음을 얼굴에 붙이고

이 변곡에서 그만 이탈하자.


서로 도둑질한 마음을 들고 우리는 함께 간다

서로 도둑질한 웃음을 참 헤프게 낭비하듯 쓰며 간다.


우리는 이탈 한다

병으로 부터, 날이 선 것과 상처와 외로움으로 부터


닿지 않는것과 먼것으로 부터

숨소리와 체온과 웃음만 들고


우리는 함께 도둑이 되어 도망치듯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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