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바닷가 마을에서, The Hasting Contemporary
2023. 6. 10 - 10. 1
영국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
내 그림의 명제는 하늘과 땅과 문, 즉 ‘천지문(天地門)’이다.
언젠가 윤형근은 ‘하늘과 땅’으로 본인의 작업을 설명했다. 파란색은 하늘이 되고 암갈색은 땅의 빛깔을 나타낸다. 작가는 두 색, 번트 엄버 Burnt Umber와 울트라마린 블루 Ultramarine Blue를 혼합하여 오묘한 검은색인 ‘청다색(靑茶色)’을 만들어낸다. 누런 마포 위에 기둥처럼 그어진 단단한 검정은 미묘한 색상 차이를 통해 구조적인 ‘문’을 드러낸다. 작가는 테레빈유로 희석한 안료를 사용해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페인트를 겹겹이 칠해 강렬하고 깊은 어둠을 만들어냈다. 천지문을 담은 마포는 물감이 자유롭게 스며들고 번지게 함으로써 동양의 정서를 한껏 고취한다. 계속된 겹치기는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만들고 물리적 시간 감각을 효과적으로 생성한다. 관람객은 문의 빈 곳으로 흡수되고, 전시장에는 고요한 명상의 세계가 열린다.
전시가 열리는 헤이스팅스 현대미술관은 영국의 유서 깊은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다. 그물 오두막과 어선의 구조물들 사이로 들어선 미술관은 주변과 어우러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는 미술관의 위치는 윤형근 그림의 명제를 그대로 품도 있다. 찰랑이는 파도는 한국의 구수한 흙냄새와 푸근한 정취를 은은히 실어 나른다.
혹시 영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해이스팅스 방문을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 영국 최초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윤형근의 「천지문」 연작 12점을 선보이며 이번 10월까지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
글: 문혜인
자료: 헤이스팅스 컨템포러리
작품 이미지: © Yun Seong-ryeol. Courtesy of PKM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