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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hayn Sep 14. 2023

도라산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디엠지(DMZ) 전시:체크포인트

2023. 8. 31 - 11. 5

파주, 연천 일대


한국전쟁이 멈춘지 70년 되는 올해, 끝나지 않은 전쟁은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 사이에 비무장지대, 디엠지 DMZ를 만들었다. 디엠지는 남북의 첨예한 갈등을 완충시키며 중립지대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람이 떠난 숲에는 넝쿨이 우거지고 자연의 생명들이 터전을 일구었다. 이따금 철창 너머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는 그곳에서 ‘경기도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이 열렸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는 70년간의 남북분단으로 생겨난 디엠지 일원의 여러 장소를 연결하며 2부에 나누어 개최된다. 8월 31일부터 9월 23일까지 파주에서, 10월 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연천에서 진행된다. 파주는 북의 기정동 선전마을과 개성까지도 볼 수 있는 도라전망대와 한국전쟁 정전협정 후 50여 년간 미군 부대로 사용되었던 캠프그리브스, 평화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개최된다. 연천은 민통선 내부에 있었던 안보전시관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연강갤러리와, 북한 원산까지 이어지는 경원선 중 신망리역, 대광리역, 신탄리역 세 역을 엮은 ‘경원선 미술관’의 공간을 활용한다. 전시에는 국내·외 27명의 미술 작가가 참여해 한국의 분단 상황과 디엠지 접경 지역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작품으로 표현했으며,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디엠지를 해석하고 연대의 의미를 환기하고자 한다.


(좌)높게 쳐진 철책이 삼엄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우)도라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북측 전경






이우성,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1

한국전쟁 다시 154고지라고 불리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김포의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의 풍경이다. 북한의 해물선전마을과 불과 1.5km 거리에 자리한 애기봉 앞에는 한강, 임진강 그리고 조강이 흐른다. 작가는 조강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북녘땅을 바라보며 북한 땅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한 사람을 떠올리고 안부를 묻는다. 



이끼바위쿠르르, 덩굴: 경계와 흔적, 2023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인 동시에 자생하는 동식물들이 만드는 생태계의 역설로 잠식된 공간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DMZ 일대 식물을 채집하여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을 한 그라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인다.



임민욱, 커레히 – 홀로서서, 2023

국내 주둔한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캠프그리브스의 체육관 시설에는 총 33장의 군용 모포가 높은 천장으로부터 낙하산처럼 걸려 있다. ‘커레히’는 체로키어로 ‘홀로 서다’ ‘홀로 버틴다’라는 뜻이자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했던 미2사단 506연대의 모토이다. 



장수미, 비스듬한 느낌, 2023

모포 아래 두 신체는 서로를 탐색하며 체육관의 이곳저곳을 횡단한다. 전쟁이 기록하는 공식적인 사건과는 달리 신체의 미시적인 감수성에 기생하는 움직임들은 서로를 수용하며 동시에 변환하게 하는 정동의 지점을 모색한다.



이정훈, 금지된 걸음, 2023

전쟁이 멈춘 70년, 걸음도 묶여버린 시간을 철로 만든 다리와 이를 아프게 옥죄는 얽힌 철조망으로 형상화한 〈금지된 걸음〉은 현재 남북의 경계 상황과 이동이 불가능한 우리의 영토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수퍼플렉스, 하나 둘 셋 스윙!, 2019

본래 혼자 즐기는 놀이기구인 그네를 3인용으로 바꿨다. 세 명의 힘으로 진자 운동하는 그네는 잠재적 에너지를 공유된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디엠지 전시의 역설은 도라산역에 설치된 수퍼플렉스의 그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017년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바인 홀에 장소 특정적으로 설치됨으로써 맡은 바 임무를 다한 작품은 퇴역 군인마냥 도라산역에 자리를 잡았다. 작품의 부활은 차치하더라도 도라산역을 등지고 그네를 타기 위해 발을 구르던 관람객의 즐거운 모습은 체크포인트를 지키던 군사 경찰 MP의 경직된 태도와 대비되며 오히려 남북의 갈등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페스티벌이 시작될 즈음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이 거행되었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김정은이 푸틴과 정상회담을 소화하고 있다. 예술은 성실히 그 소임을 했을지라도 그네를 타는 이들의 웃음소리는 메아리가 없었고 그저 남한의 들판을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언젠가 기획 의도대로 ‘더 큰 평화’를 맞이하는 날이 있기를, 메아리가 되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사진: 문혜인

자료: 경기도 디엠지 오픈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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